[문화칼럼]배형민/大家를 기다리며

  • 입력 1999년 8월 27일 18시 29분


재능, 훈련, 지성과 경험. 그 어떤 분야와 장르이든 간에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 동시에 그 분야의 고유한 속성에 따라 걸작이 나오기 시작할 수 있는 인생의 연배가 다르다. 어린 나이의 정신적 육체적 조건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종류의 일이 있는가 하면 연륜이 쌓여야만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 있다.

한국은 음악과 스포츠 같이 재능과 어린 시절의 훈련이 중요한 분야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신동(神童)을 발굴해 냈다.

척박한 토양에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와 골퍼들이 배출된다는 것은 영재교육에 착안한 우리 나라 부모들의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아무리 글짓기 공부를 시켜도 신동 소설가는 나오지 않는다. 초등학생이 도이치 그라마폰에서음반을 낼 수는 있어도 신춘문예에 당선되지는 않는다.

필자는 형식과 규율이 엄한 분야일수록 신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의 장영주, 바둑의 이창호, 골프의 박세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이올린 바둑 골프가 요구하는 엄격한 폼(form)에 이들의 재능이 잘 맞는 것이다.

형식은 있되 그것이 흐트러져 있고 의미와의 관계들이 묘연한 장르에서는 좋은 것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시간이 길어진다. 이런 면에서 음악과 건축은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옛 서양 사람들은 건축을 정지된 음악이라고 했을 정도로 음악과 건축에는 공통의 엄격한 형식과 규율이 있다고 믿었다. 서양의 고전 음악에 화음의 체계가 있듯이 건축에도 비슷한 조화의 규율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연주가,훌륭한 건축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종류의 고뇌와 어려움이 있다.

어린 나이에 승부가 나버리는 연주의 냉혹한 세계에는 실패와 좌절의 무수한 사연이 있다. 대학시절 바이올린을 공부하던 한 친구가 말하기를 자기는 천재의 연주를 들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나 소피 무터의 연주를 듣노라면 자기가 평생 공부하고 연습을 하더라도 그 수준의 음악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괴로워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건축가치고 동서고금의 유명한 건물을 찾아가 거기서 배우는 작업을 꺼리는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아주 건강한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은 좀 부족하지만 십수년 후에 경험, 지식과 안목이 쌓이면 그 훌륭한 건축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다짐이 있는 것이다. 음악과 달리 분명 건축에서의 승부는 인생의 후반부에 갈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있다. 공부 훈련 실무를 청년시절부터 꾸준히 해도 40대 중반은 지나야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 나이 좀 먹었다고 건축을 아랫사람에게 시키기 시작하면 그간의 노력이 결국 꽃피지 못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순(耳順)에 이르러 대가로 성숙할 수도 있다. 점점 젊음만이 찬미되는 세상에서도 노인이 되어 진실로 존경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는 물론 신동과 대가를 모두 예찬한다. 많은 평범한 이들의 어린 시절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는 해도 우리에게 신동을 발굴하는 문화는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는 대가를 목매어 기다리고 있다.

배형민(서울시립대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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