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요]뾰족구두는 여성의 자존심-권력욕 상징

  • 입력 1999년 8월 24일 18시 19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가 5년간 다시 3000켤레의 구두를 사모았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이멜다의 구두 수집벽은 단지 ‘신는다’는 기능성을 넘어선 비정상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 같다. 이멜다를 제외하고 그만큼 구두를 많이 모은 사람은 1000켤레의 하이힐을 훔친 미국의 성도착증 남자환자 정도니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며,한번 신으면 발목을 자를 때까지 자동적으로 춤을 추게 만드는 분홍신 이야기까지 여자들과 구두는 오래전부터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 고대부터 여성에게 신발은 순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속담에 ‘나는 초치아 신과 신발끈을 모두 남편에게 바쳤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남편에게 처녀로 시집갔다는 뜻이다. 또 서양에서 ‘방금 막 결혼했음’이라고 써붙인 신혼여행길 자동차 뒤에 빈깡통과 신부의 신발을 매달고 달리는데 이 역시 순결한 신부를 얻은 신랑의 과시가 배어있는 풍습이다.

특히 하이힐은 여성의 권력욕과 자존심을 상징한다. 기호학적으로 첼로나 총과 더불어 신발만큼 양성적인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움푹 패인 신의 내부는 자궁을 닮았지만 높은 굽은 일종의 남근적인 파워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하이힐이 딸깍거리는 소리는 권총의 방아쇠 당기는 소리”라고 이야기했을 정도.

이멜다가 구두에 집착을 가진 것도 끊임없는 권력욕을 일종의 한풀이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철나비’라는 별명을 지닌 그녀이지만 이멜다가 결국 되고 싶었던 것은 퍼스트레이디가 아니라 대통령이었을 테니까.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함에 따라 구두 모양도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볼이 작고 굽이 뾰족한 하이힐이 홍수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통굽에 볼이 넓은 신발들이 많이 보인다. 하이힐과 ‘여성다움’을 무기로 활동하던 여성들이 이제는 군화의 이미지가 담긴 신발을 신고 남성의 세계를 저벅저벅 누비고 있다.

심영섭(고려대 학생생활연구소 임상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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