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너무 빨리 바뀌는 신호등 사고 부른다"

  • 입력 1999년 8월 22일 19시 00분


몇년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차를 타고 경춘국도를 달릴 때 겪은 일이다. 공사하는 곳도 없고 차가 별로 밀리는 것도 아닌 데 너무 자주 ‘가다 서기’를 반복해 이유를 알아본 결과 신호등 때문이었다.

나중에 차관은 경춘국도에 설치된 신호등 가운데 불필요한 것은 모두 없애라고 지시했지만 이후 없어진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모두 나름의 설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 춘천에서 채소를 사다가 서울에서 파는 김판술씨(38)는 새벽에 경춘국도를 달리다 불가피하게 급정거를 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신호등이 많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는 시간이 너무 짧아 충분히 지나갈 것으로 여기고 가속페달을 밟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통전문가들은 “교통량이 많은 국도는 차량이 한산할 경우 파란불과 빨간불 사이의 노란불 신호를 현행 3초에서 5초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속 80∼90㎞로 달리다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뀌는 것을 발견하고 급정거를 할 경우 뒷 차가 추돌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높기 때문이란 것.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중앙선 침범(1만6605건)이나 과속(1398건)보다도 많은 1만7536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고의 7.3%를 차지하는 신호위반 사고로 305명이 사망했고 2만6738명이 부상했다. 신호등 관련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운전자의 부주의나 잘못된 운전의식이지만 잘못된 신호등 시스템이나 설치장소도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교통개발연구원 설재훈(薛載勳)교통시설운영부장은 “신호등 부근에서의 사고를 줄이려면 파란불에서 갑자기 노란불로 바뀌는 신호방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처럼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뀌기 직전 3초 동안 파란불이 깜빡깜빡하도록 해 운전자들이 언제 노란불로 바뀔 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로수나 광고판 네온사인 등이 신호등을 가리는 것도 사고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지적됐다.

택시운전사 박종득씨(45)는 “특히 네온사인의 현란한 불빛은 좌회전 신호시 적색은 안보이고 파란 화살표만 보여 ‘진행’ 신호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심야시간 만이라도 네온사인 조명을 제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호시간의 길이가 교통량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해 교통정체를 야기하거나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1,2년에 한번 정도는 도로의 교통량을 조사해 신호주기를 바꿔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예산문제 등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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