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승주/4자회담 전향적접근 아쉽다

  • 입력 1999년 8월 9일 19시 21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하는 4자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렸다. 97년12월 우리 나라의 대선 직전에 첫회의가 열린 이후 여섯번째 본회담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국제적 관심은 미국 중국과 남북한이 참석하는 4자회담 보다는 그 직전에 열리는 미국과 북한의 양자회담에 쏠린 것이 사실이다. 초미의 관심사인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문제도 4자회담에서가 아니라 북―미회담에서만 취급됐다.

원래 4자회담은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제안한 것으로서 처음에 북한은 부정적 반응을, 중국은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4개 당사국은 각자 4자회담으로 얻을 것이 있다고 판단해 가시적 결실이 없으나마 회담을 계속하고 있다.

97년 봄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당시 한국은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과정에서 북―미 평화협정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을 우려해 북―미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반면에 미국은 한국의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미사일과 미군유해문제를 포함한 일련의 이슈들을 다루는 북한과 직접 협상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상충하는 입장을 조화시킨 것이 한미의 4자회담 공동제안이었고 북한은 그것이 미국과 직접협상의 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내키지 않으나 참석에 응했다. 미국은 97년12월 한국의 대선을 의식하여 대통령이 바뀌기 전에 한차례라도 본회담을 열어놓아 4자회담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의도로 막대한 식량지원을 약속하면서 북한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중국은 애초에는 북한을 의식해 중립적 태도를 취했으나 일본과 러시아를 배제한 상태에서 한국문제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현재는 다른 어느나라보다도 4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지난 20개월 동안 6차의 본 회의를 거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크게 미흡하였으나 4자회담의 성과는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우선 그것이 남북한간 정규적인 접촉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평화체제 분과위원회’ ‘긴장완화 분과위원회’ 등 소위원회를 구성하는데 합의를 보아 문제들의 실질적 논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우리의 입장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수적 성과는 매회(每回)의 4자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미, 한중, 그리고 미중간 한반도문제에 관한 논의와 협의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국들이 4자회담에 그다지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을 만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으로서는 한국에서 현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미간의 접촉에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것을 환영하는 입장이므로 구태여 그것을 위해 4자회담이라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어졌다. 동시에 미국은 기회가 있더라도 한반도에서의 평화구조문제를 한국의 참여없이 북한과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에 확신시켜주는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4자회담과 같은 틀로서 미국을 구속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4자회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또 더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나 마찬가지로 지난 정부의 작품이지만 남북대화가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4자회담은 남북한이 자리를 같이하는 유일한 협의체인만큼 우리가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즉 어떤 형식으로라도 남북대화를 갖는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4자회담은 그 전에 열리는 북―미대화 마당을 마련해 주기 위한 실속없는 의식(儀式)으로 전락돼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4자회담에 참석하는 우리 대표에게 좀 더 많은 위임과 재량권을 줄 필요가 있다. 북한은 그가 실질적 협상을 할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인식할 때 대화에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4자회담에 같이 참여하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와 도움을 필요로 한다. 특히 미국은 그것을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방편으로서만이 아니라 남북대화의 방법으로서도 활용하는데 협조해야 할 것이다. 4자회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이 필요할 때이다.

한승주(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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