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밀레니엄 베스트]콜럼버스의 '새음식'

  • 입력 1999년 8월 8일 19시 33분


첫 번째 천년의 가장 중요한 식사는 최후의 만찬이었다. 이 때의 기록이 아주 충실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최후의 식탁 위에 어떤 음식들이 올라와 있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천년의 가장 중요한 식사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첫 발을 내디딘 뒤 맨 처음 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다녀온 이후 세계인의 식사는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콜럼버스 이전 아일랜드인들은 감자라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이탈리아인들은 토마토 소스없이 스파게티를 먹었다. 초콜릿 역시 아메리카 대륙 바깥의 세상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인도 음식에는 고추가 들어가지 않아 매운 맛이 없었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때까지 땅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1492년 12월 12일, 콜럼버스가 바하마 군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음식의 역사상 그 때가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를 몰랐던 것 같다. 원주민들이 콜럼버스 일행을 보고‘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는 원주민들이 갖고 온 음식에 대해 항해일지에 단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 석 달간 섬을 돌아다니면서 그는 음식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것과 너무 달라서 경이로울 정도’인 물고기를 보았고 ‘수천 종류의 나무들이 각각 나름의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음식에 뭔가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일부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가 기쁨에 들떠 옥수수 칠리고추 고구마 등을 쓸어담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새로운 음식을 모아 가져가려던 콜럼버스의 계획은 산타마리아호가 암초를 들이받아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콜럼버스는 이것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섬에 39명의 부하들을 남겨두고 그들에게 ‘1년 이상 버틸 수 있는 빵과 포도주, 땅에 뿌릴 수 있는 씨앗’을 주었다. 그리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다시 항해를 떠났다. 물론 그 지방의 왕이 베푼 연회를 실컷 즐긴 다음이었다.

이 연회에 대해서는 콜럼버스도 기록을 남겼다. 콜럼버스 일행은 ‘서너 종류의 얌(고구마의 일종)과 새우, 새고기, 원주민들이 카사바라고 부르는 빵’ 등을 먹었다. 양파 복숭아 배 오렌지는 식탁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밀이나 설탕이 들어간 음식도 없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는 돼지 양 염소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의 고기로 만든 음식도 없었다.

원주민들의 이같은 음식문화를 바꾼 것도 역시 콜럼버스였다. 그 다음해에 아메리카 대륙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17척의 배를 끌고 왔는데, 거기에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음식의 잔치가 바야흐로 벌어지려는 참이었다.

▽필자:루스 라이츨〓뉴욕 타임스의 전 요리 비평가, 잡지 구어메이의 편집자.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i/reich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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