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차로制 폐지후 고속도 「무법천지」로

입력 1999-07-30 18:44수정 2009-09-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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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목숨을 걸고 달리는 느낌입니다.』

지방출장이 잦은 회사원 박모씨(29)는 요즘 고속도로를 타기가 겁난다. 주행 중 갑자기 대형 화물트럭이 끼어드는가 하면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뒤에서 연방 경적을 울리거나 전조등을 깜박이는 등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

5월부터 차종별 지정차로제가 폐지돼 3,4차로로만 달리던 대형 차량이 1,2차로로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게 되면서 난폭 질주하는 화물차 때문에 고속도로가 무법천지로 변하고 있다.

특히 최근 휴가철을 맞아 가족 단위 피서객이 늘어나면서 중형 및 소형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실제로 지정차로제가 폐지된 지 한달이 지난 6월의 전국 고속도로 교통사고는 지난해 같은 달의 480건보다 21.3% 늘어난 582건이나 됐다.

29일 오전 9시반 남해안고속도로 서부산IC∼장유 구간.

1차로에서 승용차와 대형 화물차의 공포의 레이스가 벌어졌다. 1차로로 가는 승용차의 바로 뒤에 붙어서 다가온 2t 트럭이 빠른 속도록 뒤쫓아와 연신 전조등을 켜댄 것.

당시 두 차량의 속도는 시속 100㎞를 훨씬 넘었지만 승용차 운전자는 오기가 발동한 듯 차로를 바꾸지 않고 속력을 더 높였다.

화가 난 화물트럭 역시 결코 질 수 없다는 듯 1,2차로를 번갈아 달리며 승용차를 위협적으로 밀어 붙였다. 두 차량의 ‘목숨을 건 질주’는 다음 분기점까지 약 5분동안 계속됐다.

본보 취재팀이 이날 경부 영동 중부 고속도로를 차례로 주행해 본 결과 대형차량이 마구잡이로 1차로에 진입하거나 추월하기 위해 중소형차를 밀어붙이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대형트럭과 트레일러가 시속 100㎞ 이상으로 과속 질주하다 갑자기 1차로로 끼어드는가 하면 1차로로 달리던 경차 뒤에 바짝 붙어 계속 전조등을 켜대는 바람에 경차가 겁에 질려 차선을 양보하는 경우도 많았다.

휴게소에서 만난 한 승용차 운전자는 “대형 화물차가 뒤에 따라오면서 위협을 가하기 일쑤고 뒤따라가더라도 시야가 가려져 도로 상황을 알 수 없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며 “특히 밤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대형차량의 지정차로제가 폐지된 것은 화물차가 1,2차로가 비어있어도 이용하지 못해 물류비용이 증가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러나 승용차 운전자들은 “대형 화물차량의 지정차로제와 제한속도 폐지가 불가피했다면 그에 따른 안전확보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朴用薰)대표는 “외국의 경우 차종별로 차로를 지정하지는 않지만 상업용 차량을 공간적으로 분리시키는 전용도로나 속도에 따라 차로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도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재현·박윤철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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