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호철/공동정권 시간이 없다

  • 입력 1999년 7월 12일 19시 25분


또 시작이다. 아니 이상하게도 그동안 잠잠하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잠잠하던 공동정권 내의 불화는 특별검사제를 놓고 김종필총리와 김영배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의 대립으로 다시 불이 붙더니 김총리의 말 한마디에 김총재권한대행이 경질되고 이만섭체제가 새로 출범하는 사태로 발전하고 말았다. 돌이켜보건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공동정권 출범 이후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불화는 내각제 문제를 중심으로 잊을 만하면 다시 터져나와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 왔다.

▼위기상황서 또 내분▼

4월에는 이같은 불화가 자민련 의원들의 몽니에 의해 서상목의원 구속처리안이 부결되는 충격적인 항명사태로까지 발전해 공동정권은 최대의 내부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위기는 공동정권의 지도부로 하여금 공멸에 대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 8월까지 내각제 논의를 중단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공동정권의 내분이 또다시 내적 결속이라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작용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특히 이번 사태가 우려되는 것은 반복되는 공동정권의 내분에 따라 국민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옷로비사건, 진형구 파동 등 현 정권이 그간의 국정혼란을 넘어서 국정파탄과 도덕적 파탄으로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내분이 터져나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바로 이같은 국정파탄과 민심이반을 치유하고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현 정권이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려는 시점에서 이같은 내분이 터져 나옴으로써 개혁작업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앞으로 정치일정 등을 고려할 때 올해중에 개혁작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면 개혁은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번이 사실상 현 정권이 추진할 수 있는 개혁의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가중된다.

이번 사태 자체도 단순한 공동여권의 내분이라는 측면을 넘어서 그 의미를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히 집권당의 총재권한대행이 총리의 말 한마디에 목이 날아가는 것은, 특히 안동선국민회의지도위의장이 지적했듯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대중대통령과 수십년간 민주화투쟁을 해온 김전총재권한대행이 5·16의 주체인 김총리의 말 한마디에 목이 날아간 것은 문제가 많고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미 보도됐듯이 이번 내분은 최근의 일련의 의혹 등과 관련해 시민단체 등이 강력히 요구한 특검제를 전면 수용하겠다는 김총리의 발언에 대해 김전총재권한대행이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이 발단이 됐다.

▼개혁작업 서둘러야▼

즉 5·16과 유신의 주체였던 김총리가 특검제라는 개혁의 입장을 취한 반면 오히려 40년 민주투사가 이같은 개혁에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정말 뭐가 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진짜 우려되는 것은 내각제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한 8월이 다가오면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마지막 기싸움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 같구먼”이라는 김총리의 발언 등에 주목하여 김총리가 8월 시한을 앞두고 내각제를 위한 힘의 과시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김총리가 내각제문제에 대해 명분있게 양보 하기 위해 일부러 힘을 과시해 보인 것이라는 정반대의 해석이 맞서고 있다.

이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정치 9단이 아닌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이 두 해석 중 전자가 사실이라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긴 말이 필요없다. 심각한 국정파탄과 민심이반을 생각할 때 공동정권은 집안싸움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공동여당은 내분이 아니라 김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실현할 전면적인 개혁, 특히 특검제의 전면수용 등 자기개혁 작업에 나서야 한다. 국민회의의 새 지도부에 기대를 걸어본다. 그리고 내각제 문제도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8월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빠른 시간 내에 당략을 넘어선 국가적 관점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손호철(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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