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관계 서둘러 될 일 아니다

  • 입력 1999년 6월 20일 20시 13분


남북한 차관급회담이 작년 4월 이후 14개월 만에 오늘 다시 베이징(北京)에서 열린다. 작년 회담에서 성과를 못 본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커다란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함께 23일부터는 역시 베이징에서 북―미(北―美)고위급회담도 열린다. 시점이 서해에서 남북한의 무력충돌이 있은 직후인데다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준비에 대한 보도도 잇달아 나오고 있어 베이징으로 쏠리는 관심은 어느때보다 크다.

문제는 이같이 미묘하고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가장 효과적이냐 하는 점이다. 본란이 여러차례 언급했듯이 남북관계는 서둔다고 빨리 풀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 나름대로의 원칙, 예를 들면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과 정신 등에 따라 여유를 갖고 순리대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 부처간에도 손발이 맞지 않고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졸속정책이 나오기 십상이다. 특히 조기 성과나 한건주의에 연연하다가는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이 서해안 북방한계선(NLL)문제를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은 바로 그같은 대북(對北)정책의 원칙과 순리를 벗어난 단적인 예다. 외교부측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불가침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제10조의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라는 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 규정은 말 그대로 남북기본합의서의 가동과 그에 따른 ‘남북불가침’의 실천 및 준수가 이뤄진 후 적용될 일이지 지금과 같은 북의 도발상황에서도 협의가 가능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더구나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발언은 자칫 현재의 NLL을 북한측에 얼마간 양보할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적지 않다. 서해의 교전상황이 채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외교부 장관이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면 NLL을 사수하고 있는 우리 장병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우리는 홍장관의 발언이 햇볕정책에 조금도 융통성이나 탄력성을 보이려 하지 않는 현정부의 경직된 자세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본다. 군이 북한군의 서해도발에 대한 초기대응에서 혼선을 빚은 것도 따지고 보면 햇볕정책을 외곬으로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국정원장은 국회에서 서해에서의 북한 함정 침범사실을 ‘월선(越線)’이라고 정부당국자가 표현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사과까지 하지 않았는가. 이번 베이징차관급회담도 마찬가지다. 햇볕정책의 성과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금물이다. 유연하고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남북대화의 터널도 뚫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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