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인류모험史]인간 두뇌의 신비 규명

  • 입력 1999년 6월 17일 19시 24분


탐험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든 미개척지 중에서도 우리의 두개골 안에 자리잡고 있는 그 미지의 영역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없다. 그곳에는 한 사람의 인간됨을 결정하는 모든 것의 열쇠가 들어 있고, 좀처럼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코넬대 신경학 교수인 조이 허시의 도움을 받아 뇌 속을 탐험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의 여행 계획은 간단했다. 자기공명영상(MRI)장치를 이용해 필자의 뇌를 여러번 검사하면서 필자에게 여러 가지 자극을 주어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첫번째 검사에서 필자는 MRI장치를 14번 통과했다. 필자의 뇌의 청각 시각 촉각 운동 언어영역에 대한 대강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MRI장치를 한 번 통과하는 데 144초가 걸렸다. 그동안 이 기계는 뇌를 18만5000조각으로 나눠 4초마다 뇌의 활동을 측정한다고 했다.

필자가 MRI장치를 통과하는 동안 허시 박사는 필자의 시각과 촉각을 자극했다. 그리고 어떤 물체가 그려진 그림들을 제시한 뒤 그 물체의 이름을 대도록 했다. 그러나 기계 안에서는 안경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추측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이름을 말하는 실험에서도 기계 소리가 너무 커서 그냥 추측으로 대답했다. 이러다가 시각과 청각 영역이 아니라 추측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다음 실험은 언어 영역에 대한 것이었다. 필자는 20대 중반에 로마에서 산 적이 있기 때문에 영어 외에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안다. 그러나 외조부가 전적으로 이탈리아어만 쓰는 분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에도 이탈리아어에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은 어렸을 때 배운 언어와 성장한 후에 배운 언어를 말할 때 각각 뇌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번 검사를 통해 어렸을 때 들은 이탈리아어가 뇌에 남아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첫번째 검사에서 찍힌 뇌 사진을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뇌의 표면에 있는 주름 모양이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 주름의 모양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 했다. 인간의 모든 인지 활동이 일어나는 부분이 바로 이 주름인데, 허시 박사가 갖고 있는 뇌 지도에는 각각의 영역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먼저 촉각과 운동신경 부분의 사진을 조사했다. 이 부분에서 필자의 뇌는 전형적인 반응을 보였다. 즉 촉각을 자극했을 때는 좌뇌의 뒤쪽 중앙 부분의 나선형 주름이 밝아졌고, 손가락을 움직였을 때는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촉각 부분의 바로 건너편에 있는 부분이 활성화되었다.

그 다음은 필자가 걱정했던 시각과 청각 부분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그림과 소리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재미있는 결과를 낳았다. 그림 속의 물체 이름을 맞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찍힌 사진에서 필자의 시각 피질이 마치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중 네이팜탄이 폭발하는 장면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시 박사는 크게 소리내어 웃으면서 “이 귀여운 뇌가 정보를 얻어내려고 젖먹던 힘까지 내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고 있었을 때도 청각을 담당하는 부분에서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다음은 언어 영역이었다. 언어 영역은 뇌의 지배적인 반구, 다시 말해서 오른손잡이의 경우에는 좌뇌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영어로 혼잣말을 했을 때 활성화된 것은 좌뇌의 작은 부분이었다. 이곳이 바로 ‘브로카령’이라고 불리는 부분이다. 브로카는 프랑스의 병리학자로서 뇌의 언어 영역의 위치를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어를 말했을 때의 결과는 확실하지 않았다. 사진은 뇌가 활동중임을 나타내는 초록색 얼룩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허시 박사는 이탈리아어가 특히 제스처를 많이 사용하는 언어라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필자가 자꾸 정확한 답을 재촉하자 허시 박사는 영어로 말했을 때와 이탈리아어로 말했을 때 각각 밝아진 부분 사이의 작은 틈을 가리키며 “이탈리아어와 영어가 모두 브로카령에 자리잡고 있지만, 이탈리아어가 영어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다”고 말했다. 즉 필자가 이탈리아어를 배운 것은 성인이 되었을 때라는 것이었다.

두번째 검사에서 우리는 작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필자만의 독특한 특징을 탐구해보기로 했다. 뇌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보고, 친한 사람을 만났을 때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뇌가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허시 박사는 우선 필자에게 간단한 그림과 소리를 제시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했다. 그 결과 예상했던대로 시각 피질이 밝아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우뇌의 전두엽 주위의 여러 부분도 함께 밝아져 있었다. 게다가 다른 부분도 이 활동에 간여하고 있어서 사실상 하나의 네트워크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었다. 필자의 언어 영역은 좌뇌에 있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부분은 우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판명된 것이다.

허시 박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부분과 그 이야기를 말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분이 양쪽 뇌의 같은 부분에 각각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특히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그 다음 실험에서는 친숙한 목소리와 얼굴을 접했을 때의 결과와 낯선 목소리와 얼굴을 접했을 때의 결과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필자 자신의 어릴적 사진을 비롯해서 가족과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는 시각 피질과 해마상 융기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뇌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해마상 융기는 장기 기억의 저장과 관련돼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광경이 눈에 띄었다. 친숙한 얼굴을 보는 동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영역’이 가장 많이 활성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이용한 실험이 끝난 뒤 필자와 허시 박사는 목소리를 이용해 같은 실험을 했다. 이번에도 필자는 기계소리가 너무 커서 가족들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필자가 어렴풋하게나마 누구 것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목소리뿐이었다. 그런데 실험 결과를 보니 놀랍게도 필자의 뇌는 모든 목소리의 주인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친숙한 얼굴을 보았을 때 밝아졌던 부분들이 똑같이 밝아져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시각 피질까지도 활성화되어 있었다. 마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필자가 그 주인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본 것 같았다.필자는 이 실험 결과를 보면서 기억 속에서 이야기가 서술하고 있는 역할에 특히 주목했다. 친숙한 얼굴과 목소리를 접했을 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활성화된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그 사람과 관련된 서술적 기억을 함께 분류한다고 암시하는 듯했다.

그 다음은 비유와 동의어를 생각해내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우뇌가 싸구려 식당의 네온사인처럼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실험에서 거의 언제나 활성화되었던 부분들, 즉 시각과 피질 언어 영역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영역 등도 활성화되어 있었다. 필자가 뇌를 사용할 때 자주 이용하는 부분들 사이에 일종의 네트워크 같은 것이 형성돼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뇌 사진에서 활동중인 영역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중계소가 있는 회로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유머에 관한 실험에서 두드러졌다. 어떤 그림을 보며 너무나 우습다고 생각한 순간 뇌 전체에 걸쳐 활동이 감지되었다. 해마상 융기가 밝아진 것은 유머를 느낄 때 기억이 모종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고 우뇌의 시상이 이번 실험에서 처음으로 활성화된 것은 감각적 자극이 처리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심지어 보통 신체적 움직임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감각 운동 피질도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 회로, 또는 네트워크는 ‘의식’의 활동을 암시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마음에 대해 정확한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뇌에 대한 궁금증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분노, 불안감, 성적인 흥분 등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을 느꼈을 때, 또는 도덕적인 고민을 할 때 뇌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었다.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시간도 모자라고 적절한 실험 방법도 찾을 수가 없어서 이런 궁금증을 그냥 덮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허시 박사가 지적한대로 우리는 이제야 겨우 미개척지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다. 언젠가는 정신과 의사의 방 소파에 누워 최면술 치료를 받는 대신 MRI 장치로 뇌 사진을 찍어 정신활동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게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필자〓스티븐 S 홀(뉴욕타임스 매거진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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