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정진홍/연재물 표제 너무 전문적

  • 입력 1999년 5월 16일 20시 04분


전문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적어도 ‘완벽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그것은 그들의 긍지이고 또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체로 전문가는 비전문가들이 자기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 특히 비판적인 언급을 하는 경우 격한 반응을 보인다. 그 반응의 내용은 그러한 비판이 대체로 ‘무식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비전문가의 전문직에 대한 비판은 필연적으로 ‘무식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문가의 전문가다움은 바로 그러한 비전문가의 무식한 비판을 ‘계몽’시켜주고 바로 ‘무식한’ 비전문가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있다.

그렇지 않고 비전문적 비판을 차단해버리면 결과적으로 전문가들은 자신의 울 안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다. 자기만족에 탐닉하면서 서서히 자멸하는 것이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도 이 보편성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전문직 종사자의 태도는 스스로 지닌 ‘봉사적 직능’을 망각한 채 오히려 자신을 무식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적 직능’을 구사하는 ‘힘있는 자’로 인식하게 한다. ‘언론의 오만’이라고 해도 좋을 이러한 태도는 매일 매일 신문지면에서도 예사롭게 나타난다. 흔히 ‘언론의 문제’를 기사의 공정성 정확성 등을 통해 논의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면서 상당한 정도 투명해질 수 있을 뿐이다. 언론의 힘의 구사는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에서 더 견고하게 드러난다.

특히 기사의 제목이 그러하다. 일반적인 보도 기사의 표제는 ‘내용’의 범주에 넣기로 하고 기획 또는 특정 면들을 중심으로 그 표제를 살펴보자.

9일자 A9면에는 ‘리걸 스탠더드/Legal Standard/개방사회의 문화 법률전쟁’, 13일자 A8면에는 ‘클린 21/Clean 21/맑은 사회를 위하여’라는 표제의 기사가 있다. 이 날 수도권 면에는 ‘메트로폴리탄 인사이드 Metropolitan Inside’, 11일자 C8면에는 ‘Millennium Kid/밀레니엄 키드’라는 표제의 기사가 있다. 뉴욕타임스를 전재하는 면이 영문 제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기사 표제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Metropolitan Diary’ ‘Quotation of the Day’ ‘National’ ‘Arts/Living’ ‘Science Q&A’ 등. 10일자 C8면에는 ‘이 남자가 사는 법/His 라이프’라는 표제도 등장한다.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라는 추세, 시각적인 도안을 중시하면서 ‘현대적 감성’을 드러내야 할 필요, 이른바 ‘섹션신문’의 특수성 또는 전문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표제의 선호는 오히려 각기 특정한 독자군을 위한 더할 수 없는 봉사라고 틀림없이 ‘전문성’에 의해 정당화될 것이다. 어차피 오늘의 신문은 마치 텔레비전 채널 선택처럼 독자가 읽고 싶은 면만을 선택해 읽도록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박하고 ‘무식한’ 많은 독자들, 신문에 실린 글들을 가능한 한 모두 정성스럽게 읽고자 하는 독자들은 불편하다.

영어를 남용하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혹 그러한 편집이 전문직의 ‘자기 함몰’과 관계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그리고 동아일보의 창간정신인 ‘문화주의를 제창함’의 내용이 때로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정진홍<서울대교수·종교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