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柳지사 현장검증 거부 안될 말

  • 입력 1999년 4월 29일 19시 28분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가 도둑사건과 관련, 서울사택을 돌연 폐쇄해 검찰의 현장검증을 못하게 만든 것은 온당치 않다. 정말 떳떳하다면 현장검증을 왜 피하려고 하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된다. 유지사는 사택폐쇄행위가 시중의 의혹을 더욱 부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해 필요하다면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다. 더욱이 유지사는 대통령 경제고문역할까지 하는 핵심 고위공직자의 한사람 아닌가.

유지사와 경찰서장 등이 털린 이른바 ‘고관집 도둑사건’을 보는 국민의 마음에는 숱한 의문이 쌓여 있다. 유지사 입장에서는 절도범의 횡설수설로 의혹이 커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유지사는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오해가 있다면 오해를 풀고, 진상은 진상대로 밝힐 의무가 있다고 본다. 유지사측은 그동안 경찰과 검찰이 이미 세차례 현장조사를 했다고 하나 피의자를 데리고 제대로 실시한 현장검증은 한번도 없었다. 지문채취와 사진촬영 사택위치 및 내부구조 확인에 그쳤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현장검증은 피의자의 진술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나 신빙성을 판단하는데 유효한 수단이다. 한화 3천5백만원 외에 서재의 007가방에 들어 있던 미화 12만달러를 훔쳤다는 피의자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유지사 사택에서 범행과정을 재연시켜볼 필요가 있다.

3천5백만원 부분은 피해자와 피의자의 주장이 거의 일치한 반면 12만달러 부분에 대해서는 유지사측이 단 1달러도 없었다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현장검증은 필요하다.

유지사측은 “더 이상의 현장검증은 피해자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가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한다. 거짓과 비방이 난무하는 비정상적 정치문화를 고려하면 유지사측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프라이버시가 침해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사는 공인(公人)답게 국민적 의혹사건을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본다.

유지사 사택에 대한 현장검증은 3천5백만원의 출처조사와 함께 박상천(朴相千)법무장관이 지난주 국회에서 약속한 사항이기도 하다. 유지사는 부동산사무소에 사택을 내놓으며 치웠다는 집기 등을 검찰 요구대로 원상복구해 현장검증에 응하기 바란다. 이대로는 이번 사건을 둘러싼 국민의 의혹을 씻을 수 없다. 검찰은 기소시한에 쫓겨 현장검증을 생략한 채 수사를 마무리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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