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집중진단/우리말의 외국어번역]판치는 오역

  • 입력 1999년 4월 19일 18시 58분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리려면 외국어 번역이 꼭 필요하다. 노벨문학상을 타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의 번역 현실은 참담하다. 문학 번역의 부실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청와대 영문 홈페이지같은 우리 문화 해외홍보물 역시 수준 이하다(오역사례 참고). 번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최근 번역 능력 향상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우리 번역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해결책을 찾아본다.》

번역이야말로 정보화시대 국제문화교류의 인프라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부적절한 단어 사용, 문법적 오류, 오자(誤字)는 물론이고 영어답지 못한 표현, 외국인에 대한 배려 부족 등. 그런데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온갖 오역과 저질 번역에 대한 아무런 규제가 없다는 점. 외국인 이용자들은 애초부터 엉터리 내용을 읽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번역만 해놓고 손을 털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번역작품이 외국에서 제대로 유통이 되는지 않는지엔 관심을 두지 않는 실정이다.

▽정부차원의 번역 정책 부재〓번역 정책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가 없다. 문학번역은 문화관광부 문예진흥원과 한국문학번역금고, 학술번역은 교육부 학술진흥재단, 기타 홍보물은 관련 부처에서 각각 알아서 한다. 번역 관련 업무를 담당할 책임있는 주체를 마련해야 한다. 가칭 ‘국가번역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학분야 번역 치중〓지금까지의 번역은 문학분야에만 치중돼왔다. 문예진흥원, 한국문학번역금고나 번역을 지원하는 유일한 민간기구인 대산재단도 문학만 지원한다. 두 기관의 도움으로 번역한 문학작품은 모두 2백10여종.

문학 이외의 실용물번역에 관심이 없는 것은 큰 문제다. 한국문화홍보물, 기업 및 지방자치단체홍보물과 같은 실용 번역물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점에서 그 피해는 매우 크다.

▽전문 인력 부족〓전문 번역 인력 부족은 저질 번역을 낳는다. 대학에서 번역을 가르치는 곳은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과 이화여대 통역대학원 두 곳뿐. 일정 정도의 훈련이 필요한 실용물 번역의 경우, 변역사 국가인증제도와 재교육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네스코 한국위의 권태준 사무총장은 “정부 차원에서 이중 언어자인 젊은 해외교포를 훈련시켜 우리말의 외국어 번역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번역 출판물 사후관리 엉망〓지금까지 독일어로 번역된 우리 문학작품 55종 중 현지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은 13종에 불과하다. 외국인들이 읽지 않는 번역물은 무용지물이다.

심재기 연세대강사는 “출판사 섭외부터 현지 언론매체의 서평, 홍보, 유통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민간차원에서 어려울 경우 정부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역 저질번역 규제 장치 부재〓현재 잘못된 번역을 걸러낼 장치가 전혀 없다. 곽성희 초당대교수는 “문화재 영문설명판, 정부 관련기관의 각종 외국어 간행물과 해외홍보물 등 공공성을 띤 번역물을 모니터할 수 있는 기구나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질 번역을 감시하기 위해선 전문가가 참여하고 국가가 주도하는, 공신력있는 모니터링센터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로마자 표기의 혼란〓로마자표기는 우리의 고유명사를 외국어로 옮기는 기준이다.

그러나 현행 로마자표기법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데다 사람들이 제대로 지키지도 않는다. 인명 지명 표기가 제각각이다. 번역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고유명사의 로마자표기 통일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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