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는 세상]농부「생태사진작가」이원규씨

  • 입력 1999년 3월 7일 19시 55분


이제 곧 네발나비가 봄 소식을 전해올 것이다. 검은점무늬가 박인 황갈색날개를 활짝 편 채로. 그리고 얼마 후 각시맨노랑나비가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오고 배추흰나비가 들판을 메우면 완연한 봄이 된다.

생업은 ‘땅 파먹고 사는’ 농사꾼이지만 곤충전문가로, 생태사진작가로 더 알려진 이원규(李元奎·44)씨. 그는 올해도 네발나비를 기다리며 봄 기운을 느낀다.

경기 시흥에서 국도를 따라 수원쪽으로 4㎞쯤 거리에 있는 이씨의 농장. 몇마지기 논과 포도밭, 그리고 콩 농사를 주로 짓는 밭뙈기 등 3천여평이 그의 전 재산이다.

하지만 그의 진짜 재산은‘숨어있다’. 집처마 밑에는 말벌이, 마루 천장에는 호리병벌이 집을 지었다. 나무 밑동에는 여치가 알을 낳아뒀고 연못에는 잠자리 애벌레가 살고 있다. 밭에 심어둔 산초나무에는 산제비나무 번데기가 매달려 있다.

그것들이 모두 이씨의 피사체다. 그가 엮어낸 ‘쉽게 찾는 우리 나비’ ‘우리 나비 백가지’ ‘한국곤충 생태도감’ ‘우리 민물고기 백가지’ 등 7권의 책에 담긴 생생한 사진들이 바로 그것이다.

생태사진은 ‘순간의 포착’이 생명.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나비가 날개돋이를 위해 번데기에서 나오는 순간은 대개 2∼3초, 길어야 5초다. 숨 죽이며 파인더를 통해 노려보기를 몇시간…,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오면 카메라 초점과 노출,플래시 광량을 재빨리 조절해 순식간에 5컷을 찍어내야 한다. 그 때의 성취감이란….

이렇게 곤충 사진찍기에 미친 지도 벌써 18년. 그는 한때 젖소를 50마리까지 키운 부농(富農)이었다. 목초재배를 하다 청벌레(배추흰나비 애벌레) 때문에 농사를 망친 경험을 한 그는 곤충들의 먹이사슬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카메라라곤 만져보지도 못했던 사람이 생태사진을 제대로 찍기까지는 3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똑딱이’ 수준으로 찍다 매크로 렌즈를 구해 찍기 시작했지만 크기가 1㎜에 불과한 곤충의 알을 생생하게 찍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밤낮없이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는 그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별 이상한 사람’으로 봤다. 가족은 “무슨 밥이 나오느냐”고 아우성이었다. 그의 사진이 책으로 나오고 각종 잡지에 커다랗게 게재되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그가 농사일을 소홀히 한 적은 없다. 일주일동안 할 일을 며칠만에 끝내놓고 나머지 시간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밥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일하러 나가면 가족은 금세 “아빠가 내일 사진 찍으러 나가려는가 보다”고 짐작한다.

곤충의 한살이(사이클), 즉 알→애벌레→번데기→성충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주로 밤시간이라는 점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밤에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모내기로 한창 바쁜 농번기가 희귀나비들의 출현시기와 겹치는 것이 그는 가장 안타깝다.

그의 꿈은 ‘외국 것’ 베끼기가 아니라 진짜 ‘우리 것’으로 곤충도감총서를 만들어내는 것. 이제 국내에서 그의 사진 없이는 곤충도감을 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그러나 그동안 그가 찍은 곤충은 국내에 있는 1만여종 중 1천여종으로 10%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는 요즘도 전국의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닌다.

〈시흥〓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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