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종만/「국민연금 파동」을 보며

  • 입력 1999년 2월 23일 19시 21분


지금까지 사회복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정치 이슈로 등장한 적은 거의 없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국가 사회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관한 사회적 논쟁이 치열하게 제기된 역사적 경험이 없다. 정당들이 그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 다룬 것이 사실이다.

이와 달리 서구사회에서는 사회보장 확대 문제가 현실 정치에서 반드시 핵심적인 논쟁거리로 등장해 국민적 합의 절차를 거치는 과정을 밟는다.

▼사회복지 이슈化 의미

노후생활 보장의 핵심인 국민연금제도가 뿌리부터 흔들린 이번 파문을 지켜보며 한국 사회가 비로소 사회복지가 뜨거운 이슈로 대두되는 선진국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국민연금 확대 파문을 올바르게 논의하고 정리해서 선진복지 국가의 틀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절대로 본질을 벗어난 정쟁(政爭)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보험료 부과의 기초가 되는 신고 권장소득이 가입 대상자인 국민 개개인의 현재 소득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97년을 기준으로 마련됐다는 데서 이번 파문이 비롯됐다. 실제로 전혀 소득이 없어 납부예외자로 분류되는 학생 군인 유학생에게까지 보험료가 고지됐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사람들에게까지 고지서가 날아왔다. 해당자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대한 당국의 초기 대응은 행정편의주의적이고 고압적이었다. 여기에 지난 몇년 동안 사회적 이슈로 제기된 연금 기금의 운용에 대한 불신이 맞물리면서 국민연금확대 연기론 내지 유보론이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임의 가입으로 전환하거나 연금제도 폐지하자는 데까지 논의가 확대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금제도 확대를 둘러싼 주장은 다양하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연금에 왜 강제로 가입해야 하느냐고 원천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자유방임적 시장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연금제도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행위에 대한 침해로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연금제도에 대한 위헌심판을 청구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보완장치를 먼저 마련하고 국민의 불만을 기술적 행정적으로 누그러뜨리면서 점진적으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 여당은 연금제도 확대를 둘러싼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보험료 납부예외 대상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政爭수단 이용 말아야

소득조정폭 확대, 보험료 미납자에 대한 재산 압류 등 강제조치 배제, 소득액 재산정과 소득액 입증책임을 가입자가 아닌 연금관리공단에 부과하는 조치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적 대응은 임시적이고 단기적이며 또한 과도기적인 유예기간을 가지는 조치여야 한다. 이렇게 계속 임의가입을 용인하고 가입 대상자의 하향소득신고 경향을 방치하게 되면 연금재정의 부실화, 노후 소득보장기능의 상실은 물론 가입자간에 형평성이 깨져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한 국세 행정체계의 개혁, 금융실명제의 복원, 지하경제의 양성화 등 경제개혁 조치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인 국민 연금재정의 안정화 방안과 연금제도를 통한 세대간 소득계층간 소득재분배 기능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공표하여야 할 것이다.

행여 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단기적으로 행정적 기술적인 대응책 마련에만 진력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며 공적연금의 사회적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이에 반대하는 논리에 대해서도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민연금제도의 확대는 여야 공동 합의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다. 야당도 국민연금제도의 조속한 확대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합당한 정치적 논쟁을 전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백종만(전북대 사회복지학과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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