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與, 현실인식 안이하다

  • 입력 1999년 2월 3일 19시 05분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정치운영이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 여야가 끝없이 대치하고 지역갈등도 심상찮게 불거진 터에 검찰파동이 겹쳐 정권을 한꺼번에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에 여권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문제에는 무원칙하게 오락가락하고 어떤 문제에는 턱없이 경직되게 대처하고 있다. 여권이 현실을 잘못 보거나 안이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야당에 대한 여권의 태도에는 일관성이 없다. 야당의 장외투쟁이 본격화하자 김대통령은 여야총재회담을 수락하고 야당을 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에 ‘동서화합형 정계개편’을 공언해 야당포용 발언의 진의를 의심케 하고 야당을 되레 자극했다. 일종의 전략인지는 몰라도 여당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에게 경제청문회 직접증언을 요구하다가 간접증언으로 후퇴하더니 다시 직접증언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철(賢哲)씨에 대해서도 한때 사면을 거론하다가 청문회 증언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제는 사면 백지화로 돌아섰다. 상층부 기류나 김전대통령측 반응에 따라 중요정책이 춤을 추는 셈이다.

검찰파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경직돼 있다. 물론 “검사들이 반발한다고 총장을 사퇴시킨다면 아무리 훌륭한 총장도 소신을 갖고 검찰을 지휘할 수 없다”는 법무장관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을 처음부터 ‘개혁저항세력의 항명사태’로 단정하고 검찰수뇌부를 재신임한 것은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평검사회의를 계기로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지만 검찰수뇌부에 대한 다수 국민과 일선검사들의 불신은 오히려 쌓이고 있다.

여권의 현실대응이 갈팡질팡하거나 경직돼 있는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 뭔가 결함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간혹 여권 내부에서도 ‘이게 아닌데…’하는 자가비판이 나오지만 그것이 정치운영에 반영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누구도 대통령에게 문제의 심각성과 효과적 대처방법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 같다는 인상도 그런 데서 연유할 것이다. 대통령에게 원인이 있건 없건 보고통로나 시국대처 기획기능에 고장이 생긴 것 아니냐는 뜻이다.

여당이 갈팡질팡하면 국민은 불안을 느끼고 정부를 불신한다. 정권이 권위주의적으로 나오면 민심은 등을 돌리고 수군거린다. 여권은 국민이 믿고 예측할 수 있는 정치를 펴고 때로는 여론의 요구를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만약 참모기능에 잘못이 있다면 시급히 시정할 필요가 있다. 다수 국민이 신뢰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성공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김대중정부는 훨씬 심각한 지경에 봉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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