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1)

  • 입력 1999년 1월 12일 18시 14분


나는 오후 늦게야 깨어났고 가족들이 권하는 음식들을 한가지씩 맛보았다. 양념의 맛은 나에게는 너무 진하고 생소했다. 그들은 내게 어느 정도 조심하면서 내 기분이 안락한가를 알아내려고 했다. 나는 긴 말로 대답하지 못하고 언제나 단답형이 되어 버렸다. 맛있니, 네, 피곤하니, 아뇨, 하는 식이었다.

미국에 이민간 아우와 긴 통화를 했는데 그는 주로 자기 가족과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듣기만 했다. 이모는 불쑥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었다면서 나의 결혼 문제를 꺼냈는데 누님이 만류해서 겨우 대답을 피할 수가 있었다. 하여튼 석방 첫날 나는 어쩐지 멍청하고 만성피로에 잡힌 사람처럼 보냈다. 문고리를 잡을 때에도 자신이 객관화 되어서 ―너는 지금 문을 열려고 한다, 라고 먼저 염두에 두고나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나는 그 뒤 사흘 밤낮을 조카의 방과 거실만 오가며 누님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자형과 누님이 내 건강을 살펴보기 위하여 종합진단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도 나의 조금 이상스러운 자폐 증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첫 날만 빼고는 하루에 잠을 두어 시간밖에 못잤다. 새벽의 기상 시간이 되면 불안해져서 거실로 나와 베란다에 오래 서있곤 하였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낯선 사내가 서있었다. 나는 조카의 도움으로 아파트 아래 상가라든가 근처 사우나탕에 가본 적도 있었지만 혼자서는 밖으로 나가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가족들이 챙겨준 속옷과 세면도구를 싸들고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머리맡에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이 걸린 침대 하나와, 의자 둘 소파 하나, 텔레비전, 소형 냉장고, 화장실이 딸린 특실이었지만 방에 들어간 내 느낌은 마치 감방에 돌아온 것 같았다. 처음으로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안심이 되었다. 감옥과 병원은 그 관리방법에 있어서 사촌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간호원의 지시에 고분고분했고 일정표에 따라서 밥을 굶거나 약을 먹거나 여러 전문병동으로 안내될 때에도 가장 익숙한 입원자였다. 다행히 큰 병은 없었지만 눈이 많이 나빠졌고 특히 이빨은 거의 회복할 수 없이 나빠진 잇몸 때문에 어금니의 대부분이 망가져 있었다. 스트레스와 영양이 나쁜 상태 때문이라고 했다. 신경정신과에서는 오랫동안의 감금으로 노이로제 상태가 보인다고 했다. 불면증이나 공간 공포증, 그리고 타인과의 접촉과 말을 하기 싫어하는 증세가 나타난다는데, 가벼우면 삼 사 개월 동안 그러한 증세가 지속되다가 서서히 없어지고 심하면 일년 이상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제 나는 몇 년 안가서 노년이 시작될테지만 건강한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처방해준 신경 치료약을 잊지 않고 하루에 두 번씩 복용했다.

병원에 일주일 있는 동안에 조카가 점심 무렵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와 함께 근처에 와 있는데 혼자서 한번 외출을 시도해 보라는 권고를 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환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대학병원 구내를 벗어났다. 병원 건물이 보이는 도로까지는 별 일 없이 걸었다. 옆으로 지나치는 사람들 누구도 내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