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이봉주 이후 한국마라톤

  • 입력 1998년 12월 20일 20시 17분


올림픽이건 아시아경기대회에서건 대형 종합 스포츠 행사의 마지막날을 장식하는 최대 이벤트는 마라톤이다. 약간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마라톤을 마지막날에 넣는 이유는 마라톤이야말로 스포츠 정신과 이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종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속임수도 끼어들 수 없고 오로지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인내와 씨름하며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스포츠를 볼 때와는 다르게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20일 폐막된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마지막날 열린 마라톤에서 이봉주선수가 1위로 골인할 때도 그의 사투에 가까운 역주를 지켜보며 진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상으로 훈련량이 부족해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달리고 탈수가 심해 고전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는 이선수의 말에서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봉주선수의 우승은 90년 김원탁, 94년 황영조선수에 이은 아시아경기대회 3연패 달성의 쾌거라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아끼고 싶지 않다. 이봉주선수와 함께 뛴 북한의 김중원선수가 3위를 차지한데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92년 황영조선수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제패까지 합치면 90년대는 한국 마라톤의 최대 전성기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봉주 이후’ 한국마라톤의 미래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차세대 마라토너인 김이용만 2시간10분벽을 돌파했을 뿐 뒤를 이을 마땅한 선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 10분벽을 돌파한 현역 선수가 10여명이나 되는 일본과 대조된다. 어쩌다 탄생하는 천부적 자질의 선수에 의존하는 한 ‘마라톤 한국’의 전통을 이어가기는 힘들다. 3연패의 기쁨에 앞서 엷은 마라톤 선수층이 걱정이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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