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규성/「IMF 1년」지금부터가 중요

  • 입력 1998년 11월 30일 19시 30분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용어가 국민 일상생활의 중심에 자리잡은 지 벌써 1년이 됐다.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닥쳐온 국가 부도위기, 이어진 구조개혁 조치와 이에 따른 부도 및 실업의 증가 등으로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숨가쁘게 지나갔다. 공장문을 닫은 중소기업 사장이나 노숙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런 값비싼 희생을 치르면서 이룬 것은 과연 무엇인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IMF체제 1년이 된 현 시점에서 같이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 질적인 변화 실천할때

한국 경제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 각 부문의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 데 있다.

정부는 외환유동성을 어느 정도 확보해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회복한 금년 5월부터 금융과 기업부문의 군살을 제거하고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9월에는 대규모 재정자금을 투입하여 국내은행을 명실공히 ‘깨끗하고 건전한 은행’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금융구조조정의 큰 윤곽을 마무리했다.

기업구조조정의 큰 틀을 금년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채권금융기관 주도로 회생이 어려운 기업은 퇴출시키고 회생가능한 기업은 만기를 연장해주거나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해주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 진행되고 있다.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의 장래나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위해 긴요하다. 정부는 5대 그룹 구조조정의 속도와 강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강력히 유도해 나가고 있다.

지난 1년간의 노력에 힘입어 최근에는 각종 경제지표의 모습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외국의 평가도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족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추진한 구조조정은 부실을 떨어내고 과잉설비를 정리하는 어찌보면 하드웨어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만일 구조조정 후에도 기업들이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결코 경쟁력이 향상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도 부실화되지 않을 을 수 없고 1년간의 힘든 고생도 도로(徒勞)에 그치고 만다.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진정한 과제는 행동양식을 바꾸는 ‘질적인 변화’ 즉 소프트웨어의 개혁이다. 열린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경쟁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시장의 규율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지구촌 시대에 국제기준에 맞는 제도와 규범을 따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은 이미 그렇게 변했다.

금융기관에 대한 재정자금 투입과 관련해서는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 정부가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을 올리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투입한 것은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 국민에게는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 금융기관 제 역할 해야

이자비용만도 내년도 재정적자의 40% 수준에 이르는 큰 돈을 금융기관에 지원하도록 국민이 허용해준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 금융기관이 새롭게 태어나 ‘경제의 혈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는 엄숙한 당부는 바로 세금을 낸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제 금융인들은 국민의 여망을 가슴에 새기면서 상업성에 바탕을 두고 수익성 위주로 영업해야 한다. 여신심사 능력과 기업에 대한 경영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기법의 급속한 발전에 대응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고객중심의 서비스기관 종사자로 거듭나야 한다.

부디 금융기관의 제 모습 찾기가 조속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정부도 과거의 과오를 되새기며 금융기관 경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할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한국인들은 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외국의 언론으로부터 ‘기적을 이룬 국민’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저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지난 1년간 이뤄낸 개혁의 틀 속에 변화된 내실을 채워 넣는 힘을 보일 시점이다.

고통스러운 개혁을 마무리하고 경제성장의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면 다가오는 21세기에는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규성(재정경제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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