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가족 시네마」와 「아이스 스톰」

  • 입력 1998년 11월 26일 19시 39분


그 어떤 대의(大義), 그 어떤 가치 보다도 가족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시대. 아니 “소중히 여겨야한다”고 영화 문학 언론 등 입가진 모든 이들이 아우성치는 시대.

그래서일까. 28일 개봉하는 두 영화 ‘가족시네마’와 ‘아이스 스톰’이 그려내는 이 시대 가족의 초상화는 더더욱 우울하게 다가온다.

박철수감독의 ‘가족 시네마’에서 가족은 더이상 ‘포근한 둥지’가 아니다. 갈등 투성이인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가족들이 실제로 출연하는 영화로 만들어 스타가 되려는 둘째딸의 요청으로 20년동안 흩어져 살던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하지만 그 ‘재결합’은 큰 딸 도모에의 넋두리처럼 “서로를 족쇄에 다시 가둔 것”에 불과하다.

박감독의 카메라는 도모에 가족을 찍는 영화속 삼류 감독의 카메라와 도모에의 눈(目)사이를 오가면서 저마다 이기적 목적을 위해 “가족이 소중하다”고 떠벌리는 식구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한국인 감독이 일본 배우와 일본어 대사로 일본 현지에서 제작한, 일본영화 개방조치의 첫 수혜작인 ‘가족…’은 짙은 우울함으로 채색된 유미리의 원작과는 달리 고소(苦笑)를 자아내는 블랙코미디같은 리듬을 유지한다. 하지만 가족간 갈등의 갈피갈피가 그리 예리하게 형상화되지 못했고, 인물들의 행동의 개연성도 설득력이 약하게 그려졌다.

이 영화가 물욕(物慾)과 이기주의에 의해 파편화된 가족을 다루는데 비해 ‘아이스 스톰’은 성(性)을 출발점으로 탄생한 가족이 성에 의해 해체되는 위기를 그린다. ‘몸이 자신을 배반하는’ 시대,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전이 이상(理想)을 배반하는 사회에서 부모는 부부간에 섹스 파트너를 바꾸는 이른바 ‘스와핑(swapping)’을 하고 아이들은 주체할수 없는 성에 대한 호기심에 마약과 술의 미로속을 헤맨다.

하지만 영화는 가족을 해체시키는 그 성의 원인을 단지 동물적 본능에서만 찾지는 않는다. ‘결혼피로연’‘음식남녀’의 리안(李安)감독은 시대 전체가 성장의 아픔을 겪는 사춘기 같았던 70년대초 미국 사회의 혼돈이 한 가족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얼음처럼 차가운 어조로 형상화했다.

각각 일본과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무너진 가족의 울타리를 조명한 두 동양인 감독. 이들은 ‘그래도 가족은 역시 소중해’라는 낙관론에 섣불리 귀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시네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걱정하며 “카메라 치워”라고 외치는 분노가 상징하듯 가족은 어느 누구도 조롱하듯 해체됐다고 주장할수 없는, ‘끊을수 없기에 해체 위기가 더욱 괴로운 관계’인지 모른다. “통닭을 사들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왜 이리 넓고 푹신할까”라고 흥얼거리며 귀가길을 재촉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아빠들은 아마도 그런 결말에서 작은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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