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침묵-절제로 관객 감동 日영화「하나비」

  • 입력 1998년 11월 19일 19시 47분


삶과 죽음, 정(靜)과 동(動), 유머와 페이소스, 군불처럼 은근한 부부간의 정 그러나 죽음을 부르는 무자비한 폭력…. 한 작품 속에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요소를 절묘하게 눅여낸 영화가 또 있을까.

20일 폐막되는 아시아 아트필름 페스티벌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영화 ‘하나비’.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발표 이후 처음으로 공식상영된 6편의 일본영화 가운데 97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하나비’는 7차례 상영 모두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같은 해 베를린영화제 대상 ‘우나기’와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의 50년작 ‘라쇼몽’도 90%이상의 점유율을 보였으나 나머지 ‘지옥문’ ‘무사도 잔혹이야기’ ‘나라야마 부시코’에 관한 관심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감독의 ‘하나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12월5일 ‘일본영화 개봉1호’의 테이프를 끊을 예정이어서 페스티벌의 열기를 극장에까지 몰고갈지 관심을 끈다.기타노 다케시는 패러독스 그 자체인 인물이다. 독설로 전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이자 다방면에 식견을 지닌 칼럼니스트로 꼽힌다.

NHK를 제외한 일본의 모든 채널을 거칠게 누비면서도 영화는 독립영화를 한다. ‘폭력의 미학’을 자랑하는 형사를 연기하지만 절제와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거장의 경지에 오른 감독이다. 메이지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잘린뒤’ 코미디언으로 나선 그는 “나는 일본 영화계의 에이즈같은 존재”라고 공공연히 말하며 일본의 엘리트주의를 비웃고 있다.

‘하나비’속에도 이처럼 많은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하나’는 일본어로 꽃, 생의 상징이요 ‘비’는 불, 폭력과 죽음의 상징이다. 둘을 합하면 불꽃놀이의 뜻이니 제목 부터가 역설적이다.

전직 형사가 경찰복을 입은채 은행을 턴다. 그 돈으로 자신때문에 불구가 된 친구를 도와주고,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선적 공간, 해변으로 자신을 잡으러 온 후배형사 앞에서 울리는 두발의 총성….

‘하나비’는 칼대신 총으로 진검승부를 하는, 불꽃처럼 피었다 죽는 일본혼을 그린 전형적 사무라이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보다가는 필시 놓치고 마는 정교함이 보물처럼 숨어있다. 가장 일본적인 영화로 세계를 감동시킨 다케시의 영상언어는 우리에게 적지않은 점을 시사해준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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