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인司正 물 건너가나?

동아일보 입력 1998-11-17 18:50수정 2009-09-2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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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사정(司正)에 대한 검찰의 태도가 수상쩍다. 어찌된 일인지 어물쩍 끝내기 수순(手順)에 들어간 양상이다. 당초 추상같던 사정의지는 어디로 가고 여야가 제한적이나마 협력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정치권의 흐름을 함께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정이 이제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검찰은 그동안 혐의사실을 밝혀내고도 사법처리를 하지 못한 비리관련 정치인 대부분을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 방침이 함축하고 있는 배경과 의미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의 비리정치인 수사 마무리 방식은 두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여야 총재회담에서의 이면(裏面)합의설이 한때 나돌기도 했다. 만약 총재회담을 계기로 그 어떤 흐름이 검찰에 영향을 미친 결과가 불구속 수사방침이라면 검찰권의 독립을 위해 대단히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측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검찰수사에 절대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왔다. 정확한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의문은 남는다. 검찰의 독자적 권한에 속하는 수사방향 등이 정치적 흥정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둘째, 먼저 구속된 정치인들과의 형평성 문제다. 이번 검찰방침으로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소환조사를 회피해온 정치인 대부분이 불구속기소될 전망이다. 버티면 된다는 과거의 악습이 다시 용납되는 상황이다. 역시 법보다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비뚤어진 현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고 수사대상 의원들을 모두 구속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구속 수사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번 방침이 먼저 구속된 상당수 정치인의 경우 무리한 수사였다는 것을 검찰이 자인하는 셈은 아닌지 묻고 싶다. 사정의 원칙이 중도에 정치적으로 굴절되면 법집행의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사정이 한때의 소나기식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뿌리가 뽑힐 때까지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국민의 염원인 정치개혁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이번에 정치인 사정이 흐지부지 끝난다면 과거정권때와 마찬가지로 ‘실패한 사정’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불구속 수사방침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치인 사정을 대충 끝내려는 의도로 비쳐지는 것이 문제다.

이러다가 검찰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검찰의 속사정은 알 도리가 없고 나름대로 고민도 없지 않겠지만 검찰의 독립과 중립은 검찰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검찰은 혼란을 느끼는 국민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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