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음주운전 뿌리뽑자]판사들의 「비틀실험」

  • 입력 1998년 11월 15일 19시 58분


지난 3월 하순 어느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행정법원 구내식당. 김정술(金正述)부장판사를 비롯한 행정법원 판사들이 불고기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술자리와는 분위기가 판이했다. 서로 술잔을 권하지 않고 정확하게 30분마다 각자 소주를 한잔씩 마셨다. 이 ‘별난 파티’는 올 3월 개원, 음주운전에 따른 경찰의 면허취소처분과 관련된 각종 소송을 전담하게 된 서울행정법원이 음주량과 혈중 알코올농도와의 관계, 음주측정기의 정확성 등을 따져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술고래로 소문난 판사에서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 판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9명이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이들은 각자 소주 1잔을 마시고 30분이 지나기를 기다려 음주측정을 하고 그 다음 또 한잔을 마시고 다시 30분뒤 음주측정을 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음주측정기는 경찰청이 제공한 7대를 사용했다.

실험결과 측정기간의 오차(0.004% 이하)는 거의 없었으나 개인간의 편차는 제법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이 소주 5잔을 마셨는데도 술이 센 판사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46%로 나타난 반면 술이 약한 판사는 0.090%로 운전면허 취소기준(0.1% 이상)에 육박했다.

또 소주 2잔을 마시면 대체로 0.023∼0.025%, 4잔을 마신 뒤에는 평균 0.066%를 기록했다. 결국 소주를 3잔 정도 마시고 1시간뒤 측정하면 도로교통법상 형사처벌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 6잔을 마시면 면허취소기준인 0.10% 이상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실험에 참가했던 한 판사는 “혈중 알코올농도가 처벌기준치 이하라고 해서 운전에 지장이 없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며 “수치를 따지지 말고 한잔이라도 술을 마셨으면 차를 놓고 다니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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