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경수/「동반자」 韓中과 동북아체제

  • 입력 1998년 11월 12일 19시 15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중국의 장쩌민(江澤民)주석은 12일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하는데 합의하고 92년 수교 이후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꾸준히 다져온 양국간의 협력관계를 정치 안보 및 문화 환경 인적교류 등 전면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앞으로 세계 1,2위를 다투는 경제규모를 갖게 될 중국과의 관계 심화는 21세기를 향한 한국 외교의 이정표로 간주된다. 그동안 부진했던 동아시아의 경제통합, 지역안보협력, 환경문제 등 핵심의제에 대한 내실있는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단순히 양국관계의 진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아시아의 미래’라는 큰틀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돌이켜볼 때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과 중국 일본이라는 주변 강대국 사이의 긴장과 갈등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전개되어왔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이 지역의 세력균형 구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은 계속된 중국의 성장을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구도에서 한국 외교의 선택폭은 매우 협소할 수밖에 없었다.

▼ 교류-협력강화 이정표

이런 상황에서 김대통령이 지난달 일본 방문에 이어 중국을 방문해 장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하여 한중간의 교류협력 강화에 합의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다. 중국은 한일접근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균형된 입장을 견지할 것을 내심 희망하고 있다. 이번 방문을 통해 김대통령은 한일간 경제적 문화적 협력 확대 및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한국의 지지 움직임 등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대주변국 외교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동아시아 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 안보적 안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일중간의 상호불신이 지속되거나 북한핵문제로 인하여 일본이 재무장하는 경우 협력은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 그리고 지역국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다자간 안보협의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면서 이 지역 국가들 사이의 상호불신을 해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특히 북한에 대해 특별한 영향력을 지닌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자제시키고, 남북한의 직접 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협력토록 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주지시켜 적극적인 남북간 중재에 나설 수 있도록 중국의 외교적 노력을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대통령이 회담 중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강조하고 중국으로부터 남북기본합의서 및 비핵화공동선언 준수, 그리고 한반도 문제해결에 있어 남북 직접대화 우선 원칙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괄목할 만한 것이다.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추진해야 할 것은 경제통합이다. 아시아 지역도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대응한 지역공동 이익의 결집을 모색하고 나아가 지역경제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경제통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과의 전략적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은 현재 세계무역기구(WTO)의 가입을 가장 중요한 외교현안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고 중국경제 자체가 WTO규약과 상충되는 면이 있어 가입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중국의 교역규모와 성장 잠재력을 고려할 때 중국의 WTO가입은 불가피한 것이다. 한국은 중국이 WTO를 포함한 국제 또는 역내 자유무역질서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 지지하면서, 중국이 WTO 질서가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를 준수하고 역내 경제통합을 위한 전향적 자세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 지역경제 통합 추진을

정치 경제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환경문제다. 한중간에는 그동안 관계개선 문제와 북한문제에 얽매여 대기오염 서해오염 산성비와 같은 환경문제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날아드는 대기오염 물질로 한국이 보는 피해가 연간 1조원 수준이라는 한 연구소의 보고는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양국간의 호혜적 교류를 위해서는 이러한 중국의 오염물질 배출에 대한 한중간의 협의가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환경문제를 협의하는 초국가적인 공조체제가 형성되어야 한다.

한중관계의 진전은 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공동 목표로 하는 초국가적 공조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역내 중간 리더로서 일본과 중국을 잇는 동북아 협력체제를 구축할 때 남북한 관계개선 및 통일이라는 핵심적 국가목표와 아시아 국가에 의한 아시아 질서의 구축이라는 대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경수(서울대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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