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교류 열쇠는 신뢰

동아일보 입력 1998-11-02 19:12수정 2009-09-2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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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규모 경제협력사업 추진 합의는 한마디로 ‘획기적’이라고 할만 하다. 우선 꽉 막혔던 남북관계에 예상을 뛰어넘는 큰 숨통이 트인 느낌이다. 아울러 사업이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남북한간 정치상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일임에 틀림 없다.

남북관계는 남과 북 어느 한쪽의 선의(善意)와 열망만으로는 개선 가능성을 열지 못한다는 것이 지난 시절 남북 접촉이 가르쳐준 교훈이다. 설령 어떤 계기를 통해 희망의 가능성이 엿보이다가도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무산되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책임은 지금까지 다분히 북측에 있었다. 최근의 경우만 해도 북의 잠수정침투와 로켓발사가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현대의 대북경협 추진 합의는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업의 규모가 너무 방대하고 포괄적이어서 구체적인 진행상황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치가 배제된 민간 경제협력사업이라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정경분리를 바탕으로 한 우리 정부의 대(對)북한 화해 교류 협력정책이 거둔 성과라는 평가에도 물론 수긍할 측면이 있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지금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막대한 자금지원을 약속한 현대에 대규모 경협사업의 독점을 보장한 것은 북한으로서는 어쩌면 가장 유리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북한과 교류를 희망하거나 경협사업을 추진해온 다른 기업들에 북한측이 신의(信義)를 잃은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북한에도 현대에도 앞으로 상당한 부담으로 남을 여지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이중전략은 안된다. 일단 약속을 했으면 철저히 지켜야 옳다. 교류와 협력에는 무엇보다 상호신뢰가 바탕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이번 경협합의에서 특히 실현 가능성이 커보이는 분야는 역시 금강산관광 및 개발사업일 것이다. 2005년 이후까지 3단계로 추진되는 이 사업에서 금강산 일대를 북한의 ‘관광특구’로 개발하겠다는 현대측의 야심은 크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현재 유람선으로 추진되는 금강산관광에 ‘항공편 등 다양한 교통편’을 개발하여 연간 1백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2단계 사업계획이다.

금강산 개발계획에는 많은 자재가 요구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남한으로부터 공급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럴 경우 가장 요긴한 수송수단이 철도다. 철도는 비용절감 뿐만 아니라 남북한 모두에 큰 이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는 남북한 철도 연결사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번에 북한과 이 사업에 대한 어떤 합의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특히 현대는 철도사업이 금강산 개발을 넘어 남북을 잇는 민족적 비원의 한 상징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그동안 숱한 공식 비공식 접촉을 벌여온 남쪽 민간인들의 숨은 노력이 종합적으로 이뤄낸 성과일 것이다. 그 과정에는 남측 언론의 방북(訪北)취재 등 역할도 적지 않았다. 아무쪼록 이번 현대의 성과가 남북의 교류와 화해 협력에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북한 당국과 현대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 민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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