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스탠더드 라이프]체험으로 본 「美 기업문화」

  • 입력 1998년 9월 15일 19시 26분


95년까지 약 5년간 삼성 뉴욕법인에서 근무할 때의 일.

사무실 이사하는 날인데 신용평가 담당인 미국인 직원은 자신의 책상은 물론 사무비품도 옮기지 않는 것이었다. 이유를 따졌더니 “자리를 옮기는 것은 회사 일”이란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미국 기업 사정을 잘아는 친구들은 그들의 업무스타일을 미식축구에 곧잘 비유한다. 수비진과 공격진이 따로 편성돼 있고 공을 던지는 사람은 경기 내내 공만 던지는 것처럼 업무영역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는 것.

이렇게 돼있으니 어떤 사고가 생기면 회사내 책임소재를 금방 가려낼 수 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치가 즉시 내려질 수 있다. 다른 회사 사람을 만날 때도 그들은 상대방의 직위보다 해당 업무 담당자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진다.

미 기업의 직원 이력서에는 사진 생년월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업무능력이 가장 중시되기 때문.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업무능력에 관한 것 외에 나이나 가정사정 또는 출신국가나 출신지역을 물었다간 평등고용위원회 등으로부터 큰 곤욕을 당한다.

삼성 뉴욕법인에서도 사람을 뽑을 때는 분류된 업무에 꼭 맞는 사람을 찾았다. 우리나라 기업처럼 공채 등으로 사람을 먼저 뽑고 일을 정해주는 경우는 전혀 없다.

해고사유도 분명해야 한다. 주의→경고→재경고→해고로 이어지는 게 보통. 경고를 줄 때도 문서로 남겨 문제 소지를 없앤다.

미국 기업에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그 사람이 보유한 기능을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월급명세서에 우리처럼 가족수당 식대 자기계발비 등 잡다한 항목은 없고 지급액 세금 총계 등 세가지 뿐인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구교형(삼성물산 경영기획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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