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시형/맑은 물,서울시장이 나서라

  • 입력 1998년 9월 13일 19시 50분


한강상류주민들의 거센 항의속에 맑은 물 공청회는 결국 무산되었다. 우리 국회를 배웠는지 대화마저 원천 봉쇄되었으니 안타깝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분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상류 주민의 고통을 진정 헤아려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불법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분개하기 전에 상류 주민의 입장에 한번 서 보자는 것이다. 왜 그렇게 분노하고 무엇을 절규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 물 공청회 결국 무산 ▼

상수도 보호라는 규제 아래 나뭇가지 하나 마음대로 꺾지 못한다. 축사 하나 지을래도 그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결국 손을 들어야 한다. 농사꾼이 농사를 마음대로 지을 수 없는 법이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상수도 보호 아니라 어떤 법도 농사법에 우선할 순 없다.

하류에 편안히 앉아 윗물 더럽히지 말라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상류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 아느냐고. 손 하나 까딱 않고 앉아 정부를 향해 규제를 강화하라고 목청만 높이고 있으니 어찌 얄미운 생각이 들지 않으랴.

이건 정부와 상류 주민과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부가 대리전을 치러야 할 상황이 아니다. 시혜자와 수혜자 원칙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지방자치 시대에선 더욱 그러하다. 결론은 수혜자인 서울시장이 나서야 한다.

공청회 현장에 나가 시혜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생활에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를 드려야 한다. 그리곤 손익을 정확히 따져 보상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시혜자인 상류 주민의 희생을 볼모로 맑은 물 운운해선 안된다.

이건 국고에서 지출될 성격도 아니다. 수혜자인 서울 시민의 몫이다. 여기엔 정부가 나설 일도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은 규제의 큰 틀을 짜고 상하류 대표의 협상에 중재 역할을 하는데 그쳐야 한다.

이제 맑은 물은 상하류 주민이 함께 지키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혜자인 당사자가 마치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된다.

▼ 상류 시혜자의 고통 ▼

서울시장이 나서라. 시민과 함께 상류 주민을 방문, 그들이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받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한다. 얼마나 생업에 지장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맑은 물을 지키기 위해 서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협의하고 그 모든 비용은 서울시장이 내야 한다. 상하류의 이런 공감대가 형성될 때 비로소 상류 주민도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할 것이다.

마을 앞 개울에 고기가 놀고 멱 감고 하던 옛날이 왜 그립지 않으랴. 서울엔 놀이 문화시설도 많지만 농촌엔 맑은 개울, 푸른 숲이 쉼터요, 생활이요, 놀이요, 문화다.

그리고 넉넉하고 풍요로운 목가적 정취가 거기서 우러난다. 이걸 가꾸자는데 인색할 리 없다.

단 이 작업은 상하류 주민의 협동작업이어야 한다.

구청마다 동마다 상류 마을과 자매결연을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도 농을 연결하는 농협을 통해 무공해 농작물을 구입하는 것도 서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른들도 모처럼의 향수를 만끽할 수 있다. 도시 아이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방학 때는 농촌 일손을 도우면서 자연친화적 심성도 생겨날 것이다. 콘크리트에 굳어버린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심성에도 농촌의 자연은 대단히 좋은 치료제다.

▼ 서울시민이 보상해야 ▼

도시의 아이들은 감성적인 아이로 자랄 것이다. 바야흐로 미래 사회는 감성시대다. 풍부한 감성 없이는 창의력도 경제도 성공에의 보장도 없다.

맑은 물은 생명 그 자체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물은 지켜야 한다. 이번 환경부의 맑은 물 정책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단 상류 주민의 고통을, 불편을, 그리고 희생을 진심으로 함께 하는 하류 주민의 수혜자로서의 의식과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도시인이 생수 사마시는 돈만 상류에 투자해도 강물은 한결 맑아질 수 있다.

맑은 물을 위해선 일정한 규제, 거기에 따른 고통은 불가피하다.

단 그 고통은 상하류주민 모두의 몫이다.

이시형<강북삼성병원 정신과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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