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악조건속 안전운전]밤길 운행

입력 1998-09-06 18:52수정 2009-09-25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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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앞차를 졸졸 따라가거나 대충 ‘감’으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밤에 운전을 할 때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충이다.

얼마전 사업차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를 방문했던 D전자 정모(43)부장은 공항에서 댈러스 시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잊지 못한다. 오후 10시가 지나 비행기에서 내리자 공항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부장은 공항에서 렌트카를 빌리면서도 “좀 비싸더라도 택시를 탈 까”하고 망설였다. 댈러스방문은 처음인 데다 비마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향하면서 그의 걱정은 사라졌다. 공항 활주로를 연상케 하는 ‘휘황찬란한’ 도로표지병(일명 캣츠아이)이 시선을 유도했고 촘촘히 세워진 가로등이 앞길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기 때문. 지도를 보고 길을 찾기도 쉬웠다.

정부장이 일을 마치고 귀국한 8월14일 밤 김포공항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가지고 나온 차를 몰고 올림픽대로 여의도 부근을 지날 무렵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차선을 구분하기 힘들어 애를 먹었다. 천신만고끝에 강남구 압구정동 집에 도착한 정부장의 등에는 땀이 흘렀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밤에 운전을 하기가 힘들다. 야간교통안전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양쪽 시력이 각각 1.2인 사람이 시속 60㎞로 차를 몰고 달릴 경우 이른바 동체시력(움직일 때의 시력)은 0.7로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또 평소 시야가 2백도로 정상이라 하더라도 시속 80㎞일 때는 40도로 좁아진다. 완벽한 교통안전시설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로의 경우 대부분 야간에는 차선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중앙선이나 차로변경선 등을 전조등으로 비췄을때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하도록 빛을 반사해야 하지만 이 기준에 맞는 도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통과학연구원 안전시설연구실의 여운웅(呂運雄)선임연구원은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는 페인트를 칠한지 6,7개월만 지나도 전조등의 조명빛을 반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국이 제때 도색작업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IMF경제위기로 올들어 전국 고속도로와 주요 간선도로에서 가로등 격등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안전운행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가로등 격등제로 연간 16억2천만원의 전기료를 아낄 수 있으나 ‘어두운 도로’때문에 생기는 간접피해가 엄청나다. 96년의 경우 낮시간 교통사고(16만8백32건)가 밤시간(10만4천2백20건)보다 많았지만 사망자는 밤시간(6천4백46명)이 낮시간(6천2백7명)보다 오히려 많았다. 또 밤시간 교통사고로 인한 자동차와 도로파손 등 물적피해가 1백89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도로교통안전협회 임평남(林平南)부원장은 “노면이 고르지 않고 도로표지판과 노면표지판도 불량한 상황에서 가로등마저 끈다는 것은 눈을 가리고 운전하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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