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종희/「수해백서」만들면 뭐하나?

  • 입력 1998년 8월 11일 19시 52분


경기도는 ‘96수해백서’라는 것을 펴냈었다. 96년 7월 집중호우가 경기 파주 연천지역을 강타해 사망 12명 재산피해 1천4백24억원을 낸데 대해 ‘교훈집’을 만든 것이다. 백서가 완성된 것은 지난해 10월.

8백21쪽의 이 백서에는 수해지역의 취약요인 초동조치 이재민구호 항구복구 교훈 등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번 수해와 복구과정을 지켜보고 수해후 희생자와 이재민에 대한 사죄에 앞서 하늘을 원망하는 공무원들의 자세를 보면서 왜 이런 ‘수고스러운 일’을 했는지 착잡한 느낌뿐이다. ‘교훈 따로’‘대처 따로’가 여실하기 때문이다.

96년 수해당시 행정구역별 피해는 연천 파주 포천 동두천 남양주 양주 가평 구리의 순. 공교롭게도 이번 수재의 피해지역과 거의 맞아 떨어진다. 하천범람을 예방하기 위해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도가 올해 지방 준용하천 5백11개에 대한 개보수 및 시설관리비로 책정한 예산은 겨우 4백40억원.

해마다 1천억원이상을 물에 휩쓸려 떠내려보내면서도 외자유치 교통망확충 등에 비해 ‘생색안나는’ 재해예방에는 소홀했던것이다.

예산부족과 ‘천재(天災)’를 탓하지 말고 재해예방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백서는 가르치고 있다. 과연 그렇게 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또 일선공무원들이 피해우려지역의 현장순찰을 강화해 재해경보발령이라도 서둘렀더라면 80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집에서 자다가 급류에 휩쓸려가는 ‘원시적 재해’는 없었을 것이다.

96년 건설교통국장으로 백서 작업을 주도했던 이가 현재도 같은 자리에서 수해복구담당 업무를 총괄 지휘하고 있는 것도 아니러니다. ‘백서를 위한 백서’가 아닌 ‘실행을 위한 백서’를 기대해 본다.

박종희<사회부>parkhek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