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反개혁적 사면 없어야

  • 입력 1998년 8월 9일 20시 27분


8·15 특별사면이 임박했다. 정부수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특사(特赦)이기 때문에 규모가 클 것 같다. 이 시기에 되도록 많은 사람이 자유와 권리를 회복하는 것은 국민화합을 위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 정부는 광복절을 기해 ‘제2의 건국’을 천명하고 총체적 개혁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특히 정치인 사정(司正)을 포함한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8·15 특사도 개혁의 기조에 맞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한보사건 등 굵직한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까지 특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보비리는 뿌리깊은 정경유착에서 잉태됐고 끝내는 외환위기를 불렀다. 관련 정치인들은 형(刑)이 확정된 지 8개월도 안됐다. 그런데도 그들을 이번에 사면 복권시킨다면 정치인 사정과 정치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비리 연루 정치인을 풀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인 비리를 척결하고 정치를 개혁하겠다면, 그것은 개혁의 명분을 훼손하고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반감(半減)시킬 것이다.

정부 여당은 일부 관련자 특사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최종판단은 이제 김대통령에게 맡겨졌다. 김대통령은 인간적 고뇌와 뼈를 깎는 아픔이 따르더라도 대의(大義)에 맞게 결단해야 한다. 눈앞의 정치적 고려나 사사로운 인정에 끌려 특사를 결정해서는 개혁에 대한 국민의 냉소를 낳을지도 모른다. 특사가 국민의 법감정과 형평에 어긋난다면 정부의 개혁의지는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정치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할 수 있겠는가.

지금 다수 국민은 정치인 사정이 지지부진한 데 불만을 표시하며 과감한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며칠 전 김대통령은 정치인 사정에 대해 “부정이 있는데 적당히 넘어가거나 여당이 끼여있다고 손을 안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도 정치개혁을 보는 국민의 시선을 알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8·15 특사도 그런 민의(民意)를 존중하는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민의는 개혁을 원하고 있다. 사면 복권이 개혁에 차질을 빚게 해서는 안된다. 반(反)개혁적 사면 복권은 없어야 한다.

12·12와 5·18 관련자들을 모두 특사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도 생각해볼 문제다. 역사의 법정에 섰던 사람들을 모두 사면 복권시켜도 좋을 만큼 국민이 그들의 역사왜곡을 용서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들을 사면 복권시키자는 여권일각의 주장이 혹시 특정지역을 끌어안으려는 정략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면 더욱 잘못이다. 그것은 역사와 법의 존엄성을 손상하고 해당지역 주민들의 명예에도 오히려 상처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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