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스크린쿼터 30년의 明暗

  • 입력 1998년 7월 31일 19시 13분


지난달 한 영화개봉관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할리우드 영화 ‘고질라’는 관객이 많을 테니까 주말에, 국산영화 ‘여고괴담’은 관객이 적을 것이 확실하니까 평일에 상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괴담 신드롬’까지 일으키며 ‘여고괴담’에 관객이 몰리고 ‘고질라’에는 손님이 적었다. 약삭빠른 극장측이 스크린 쿼터도 채울 겸 ‘여고괴담’을 내리 상영했음은 물론이다.

▼외화를 선호하다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스크린 쿼터제가 없었더라면 그나마 국산영화를 평일 상영이라도 해줬겠느냐는 영화인들의 반문이다. 상황이 이런 탓에 영화인들은 최근 불거진 외교통상부의 스크린 쿼터 폐지 주장을 ‘뭘 모르는 소리’라며 벌집 쑤신듯 흥분한 모습이다. 촬영현장이 아닌 생존권 시위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인기 배우들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시장경제 측면에서 보면 외교통상부의 스크린 쿼터 폐지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다. 국제교역에서 수량제한(쿼터)이란 인정안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크린 쿼터제는 각종 국제협약에서도 예외적으로 인정돼 왔다. 프랑스는 세계 4위의 영화제작 국가이고 자국영화 점유율이 40%나 돼 스크린 쿼터제를 강제하고 있지 않지만 점유율이 떨어질 것에 대비, 1백40일의 스크린 쿼터 자체는 유지하고 있다.

▼상당수의 미국영화가 팍스 아메리카나를 강조하듯이 영화는 한 나라의 정신이 담기는 상품이다. 우리 정서를 담아내는 한국영화가 스크린 쿼터 폐지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서는 안된다. 문화종속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유지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30년 넘게 스크린 쿼터제를 존속시켜 왔지만 그 결과가 뭐냐는 지적에도 영화계는 귀를 기울일 때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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