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대화/유권자는 침묵, 정당만 법석

  • 입력 1998년 7월 21일 19시 47분


7월의 무더운 날씨 속에 IMF한파를 ‘후끈 달구었던’ 7·21 재보선이 마침내 끝났다. 익히 예상했던 것처럼 50%에도 못미치는 저조한 투표율이 선거결과를 어둡게 한다.

언론에서 누차 지적했던 것처럼 이번 선거는 ‘이상과열선거’였다.

국민회의는 새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관점에서 당력을 집중했고, 한나라당은 ‘서바이벌게임’을 하는 자세로 생존의 차원에서 임했다. 권력구조 안에서의 불안정한 위상을 벗어나려는 자민련은 권력 재배분의 차원에서 접근했다.

▼ 정당행태에 국민 분노 ▼

그러나 중앙당 차원에서 거당적으로 추진된 선거과정은 어느 정당에도 완전한 승리를 안겨주지 않았다.

‘적극적인 개혁추진’을 내세운 국민회의, 중간평가라는 관점에서 새 정부의 실정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한 한나라당, 주변에서 벗어나고자 애쓴 자민련 모두 국민의 명백한 지지를 확보하지는 못한 것이다.

늘 그렇듯이 선거는 승자와 패자를 명확하게 가름한다. 후보들에게는 승패의 구분이 명백하다. 그들 말대로 승리는 천국이요 패배는 지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정당 차원에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됐다.

어느 정당도 승리를 주장하기가 어렵게 됐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패배자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를 관심있게 지켜봤던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선거는 흔히 정치의 꽃이라고 한다. 인간이 창조한 가장 민주적인 발명품이라고도 한다. 국민적 축제라는 표현도 가능할 듯 싶다.

그러나 축제분위기 속에서 민주주의를 향유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후보를 낸 정당들이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국민을 압도할 때 유권자들은 멍하니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선거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했다. 구조조정과 퇴출, 감원과 실업으로 경제사정이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선거에 마음을 주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과정에서 정당들이 보여준 갖가지 행태는 단순한 미움을 넘어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중앙정당의 지나친 개입과 수준낮은 선거행태에 식상한 국민은 철저하게 냉소와 무관심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국민은 선거과정을 지켜보면서 선거주체가 정당인지 지역구 후보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경제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실업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데 국회는 두 달이 넘도록 개원협상조차 않고, 처리를 기다리는 시급한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이 수북이 쌓이는데도 의원들은 국회를 내팽개치고 선거에 매달렸다.

정당들은 ‘식물국회’니 ‘뇌사국회’니 하는 국민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금권선거는 물론이고 허위성 인신공격 등 온갖 구태도 유권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선거가 국민을 대표해서 국정을 담당할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라면 이름에 값하는 선거문화를 창출해야 하지 않을까.

정당이 국정을 팽개치고 지역구 선거에 매달리는 일이나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포기하고 ‘남’의 선거에 끼여드는 일은 불식돼야 할 추태다.

게다가 자기의 공약과 능력을 제시하지 않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네거티브전략’은 심하게 표현하면 지지를 구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선거가 이런 추태를 반복한다면 장차 ‘선거폐지론’이 제기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인신공격을 일삼는 정치인들의 입을 봉해야 한다는 함구령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역구 선거에 중앙당과 타지역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금하는 금족령도 내려질 만하다.

▼ 선거문화 이대론 곤란 ▼

요컨대 선거문화의 타락이 이처럼 극에 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개혁을 논하고 21세기와 새로운 천년시대를 전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척도이자 문화의 표상이다. 차분하고 진지한 선거분위기와 인품이 묻어나고 정책으로 맞대결하는 선거를 기대해 본다.

국민을 위하는 양식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영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유권자들의 활발한 참여속에 선거가 치러짐으로써 모두가 이기는 선거, 궁극적으로 국민이 이기는 선거야말로 국민적 축제라 할 것이다.

정대화(상지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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