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래아한글」을 살리려면…

  • 입력 1998년 7월 21일 19시 21분


우리나라 워드프로세서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아래아한글이 국민적 관심과 성원의 결과로 회생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다행이다. 한글과 컴퓨터(한컴)사가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글지키기 운동본부의 인수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용단’은 환영할 만하다.

아래아한글 사태의 발단은 정부당국과 해당업체 그리고 소비자 모두의 무책임성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불법복제를 친고죄 정도로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이나 대표적 벤처기업 하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또 갓 태어난 기업이 한가지 제품의 성공에 도취해 경영을 방만하게 확대한 것이나 일시적이긴 하지만 기업인이 본업을 등한시하고 다른 길을 걸었던 것도 반성해야 할 일이다. 소비자들의 의식수준도 문제였다. 80%의 사용자가 불법복제품을 갖고 있다면 소프트웨어 개발회사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는가.

아래아한글이 외국회사로 넘어갔을 때의 경제 문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면 이번 결과는 지극히 바람직하다. 그러나 아래아한글지키기 운동본부의 인수조건인 1백억원의 투자는 2백50억원이 넘는 한컴사의 부채를 감안할 때 회사를 살려내기에 역부족이다. 국민모금에 의존하는 방법은 예측되는 결과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만의 하나 재원부족으로 아래아한글이 다시 표류한다면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넘기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계속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분야다. 아래아한글의 경우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MS사의 윈도가 새 버전을 낼 때마다 계속 신상품을 내놓아야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막대한 개발비가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일개 기업이 이를 모두 부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대체할만한 우수 소프트웨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글의 상징적 소프트웨어인 아래아한글의 유지와 개발을 위해 정부차원의 지원도 고려해 봄직 하다. 이번에 나타난 국민적 열망은 정책적 지원의 당위성을 제시하고 있다.

한컴사가 결정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MS사에 사전 통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합의내용을 파기한 것이 성급하지는 않았는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이번 일로 외국투자자들이 한국기업의 신뢰성에 부정적 시각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마무리는 깨끗이 해야 한다. 아래아한글살리기 운동이 자칫 국수주의적 애국심으로 비쳐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이번 일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분야의 육성을 위해 많은 교훈과 과제를 주고 있다. 아래아한글살리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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