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수홍리스트」 철저 수사를…

  • 입력 1998년 7월 12일 19시 32분


청구그룹의 비자금제공의혹 명단인 ‘장수홍(張壽弘)리스트’에 일부 여야 실력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도되자 정치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당사자들은 관련사실을 극구 부인하지만 국민은 또다시 불거진 정치권의 ‘검은 돈’의혹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진상을 궁금해 하고 있다. 혐의점이 있다면 진상을 끝까지 파헤쳐 국민앞에 공개해야 할 책임이 검찰에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의혹사건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번에도 검찰은 주춤하는 인상이다. 그동안 말로는 ‘성역없는 사정’을 외치면서도 정치인이 연루된 껄끄러운 사건의 경우 검찰은 눈치를 보며 소극적 태도를 취하기 일쑤였다. 속시원히 파헤친 사건을 보기 어려운 게 지난날의 경험이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정치적 파장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고 또 두어서도 안된다. 정치적 고려 자체가 정치적 중립에 어긋나고 수사의 중추기관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검찰의 존재이유와 사명이 무엇인가. 범죄혐의가 있을 경우 철저히 수사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다. 검찰은 현재 수사를 완료해 놓은 채 쉬쉬하고 있는 것인지, 보완수사 단계인지, 혐의만 포착한 상태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수사를 중단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따라서 거명된 인사들이 청구로부터 정말 돈을 받았는지, 받았다면 언제 얼마를 무슨 명목으로 받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특히 돈받은 것이 사실일 경우 대가성 뇌물인지, 단순한 정치자금인지가 중요하다. 성격에 따라 법적 처리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아의 ‘김선홍리스트’를 비롯, 최근 의혹이 제기된 정치인비리관련 사건은 한둘이 아니다. 검찰은 이 모든 의혹에 대해 성역없이 철저한 수사를 벌여야 마땅하다. 밝혀진 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리고 최종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물론 기소단계에서 검찰은 기소독점주의 및 편의주의라는 재량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납득할 만한 합리적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법 절차를 검찰이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사건을 처리한다면 월권이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또 과거처럼 대상에 따라 선별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한다면 표적수사 편파수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부는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공직사회를 비롯, 개인과 사기업 및 공기업 금융기관 등 전분야에 걸쳐 ‘총체적 사정’을 벌이고 있다. 특정분야에만 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가 곪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정치권과 기업간의 정경유착은 이 나라 경제를 망친 대표적 병폐 중 하나다. 어느 분야보다 정치권 개혁이 가장 앞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권에 대한 검찰수사가 이번에도 지지부진하다면 과거정권의 사정과 뭐가 다르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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