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기부 정치개입 안된다

  • 입력 1998년 7월 8일 19시 36분


안기부가 정치개입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안기부가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거듭나기를 기대했던 국민은 크게 실망하고 있다. 안기부의 ‘정치 불개입’을 여러 차례 강조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신뢰도까지 상처를 입고 있다. 이종찬 안기부장은 안기부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개입의 원천적 차단을 다짐하며 내부개혁을 단행했으나 그런 다짐과 개혁도 회의(懷疑)를 낳고 있다.

안기부는 ‘한나라당의 호남편중인사 주장에 대한 평가’ 등 4건의 문서를 청와대 등에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문건은 인사와 예산배정을 둘러싼 야당의 공세와 언론보도를 분석하고 행정부와 국민회의의 대처방안을 제시했다. 대처방안에는 언론대책까지 포함돼 있다. 문건작성시기도 6·4지방선거 이전이다. 문서내용이나 작성시기로 보아 선거관여와 정치개입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안기부는 문제의 문건이 ‘대통령 보좌기관으로서의 통상적 정책보고서’이며 정치공작도 정치개입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번 문건만으로 안기부의 정치공작을 단정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민감한 쟁점에 대한 여권의 대응방식과 언론대책까지 ‘훈수’하고서도 정치개입이 아니라면 이를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안기부의 본래업무는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활동이다. 안기부법 제3조는 안기부의 직무범위를 규정하고 있지만 정치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응방법제시는 그 어디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특히 제9조는 안기부의 정치관여를 명문으로 금지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권의 사후태도에도 있다. 안기부는 문건을 ‘국민회의에는 보내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청와대는 ‘한두마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유감’이라고 논평했다. 이런 자세는 청와대나 안기부가 사태의 본질을 아직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호도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문제의 핵심은 문건의 일부 표현이나 국민회의 전달 여부에 있지 않다. 안기부가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해 집권측의 정치전략수립기관이나 홍보대책기구처럼 기능했느냐 여부가 핵심이다. 청와대와 안기부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한 비슷한 잘못이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검찰은 ‘북풍(北風)’을 조작해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전임 안기부장을 구속했다. 95년에는 지방선거연기 문서 때문에 문서작성 당시의 안기부장이 통일부총리에서 해임됐다.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사태의 전말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관련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옳다. 정치관여 소지를 말끔히 없애도록 안기부법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안기부의 정치개입은 절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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