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김일성 사망 4주년]南-北 냉기류 걷히나?

  • 입력 1998년 7월 7일 19시 29분


94년7월8일 김일성(金日成)이 사망한지 4년이 됐다.

남북한이 그해 7월25일부터 28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갑자기 닥친 그의 사망은 결과적으로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했다.

북한은 당시 한국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군의 경계를 강화하고 재야와 학생 등의 조문을 금지시킨 것을 트집잡아 김영삼(金泳三)정부를 비난하며 일절 당국간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북핵문제로 악화일로를 치닫다 94년6월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방북과 그에 따른 남북정상회담 추진으로 겨우 국면전환을 모색하던 남북관계가 다시 험악해진 것은 물론이다.

정부가 94년11월 기업인의 방북과 대북(對北)투자가 가능하도록 남북경협활성화 조치를 취하고 95년6월 쌀15만t을 북한에 제공키로 하는 등 경우에 따라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음에도 남북관계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이어 발생한 북한 군의 판문점 무력시위(96년4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96년9월), 황장엽(黃長燁)노동당비서의 망명(97년2월) 등으로 김영삼정부 내내 남북관계엔 냉기류가 걷히지 않았다.

대북 경수로사업과 관련해 우리 인력과 물자가 북한 땅에 대규모로 들어가는 발판이 마련됐고 남북교역이 꾸준히 증가하는 등 교류협력 분야의 진전이 없지 않았지만 군사정치적 긴장 때문에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민족통일연구원의 류호열(柳浩烈)박사는 “북한이 체제위기 극복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남북대화에 나서지 않은데다 정부도 북한의 조기 붕괴를 예상하고 대북봉쇄정책을 실시한 탓에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남북관계는 그러나 김일성 유훈(遺訓)통치를 해오던 김정일(金正日)이 지난해 10월 당총비서직을 승계한데 이어 한국에서도 대북 햇볕론을 강조하는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새 전기를 맞았다.

남북은 대북비료제공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4월 열린 베이징 차관급 회담에서 정치문제에 대해 견해차를 보이기는 했지만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데는 인식을 같이 했다.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의 방북과 함께 잠수정 사건을 상호비난이나 선전전으로 확대하지 않고 비교적 조용히 처리한 것도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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