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군들의 병무청탁

  • 입력 1998년 6월 22일 19시 37분


병무비리 리스트에 야전군사령관과 기무사령관을 비롯해 현역장성이 7명이나 포함된 것은 충격적이다. 발표에 따르면 현역 육군대장인 3군사령관의 아들은 중국어 전공자임을 내세워 어학병으로 근무했음이 드러났다. 군 사정(司正)을 책임져야 할 기무사령관은 군단장 재직시 친지 아들의 입영절차를 안내해주라고 육본 담당장교에게 청탁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입대장병을 교육 훈련시키는 책임자인 논산훈련소장은 아들의 입대일자를 연기하라고 직속부하인 부관처장에게 지시했다. 신병의 부대배치 책임자인 육본 부관감의 경우 이번 병무비리의 주범격인 원용수(元龍洙)준위로부터 상납도 받고 친구 아들의 입대일자도 조정해주었다. 직위를 이용한 청탁비리의 전형이다. 부하 행정장교가 상관의 이름을 빌려 병무청탁을 한 희한한 유형도 적발됐다. 우리 군의 기둥인 장군이 왜들 이러는가. 군 지도자들은 스스로 종아리를 치며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각성하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야 한다.

장군 중 상당수는 입대일자 연기나 입영절차 안내 등의 사소한 부탁을 했다는 것이지만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장군의 ‘병무상담’이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도 부하에게는 해결해야 할 현안과제로 심리적 압박을 주는 것이 군대사회의 특성이다. 자식의 국방의무 이행에 모범을 보이지 못한 군 간부가 남의 아들들에게 엄한 지휘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원준위의 병무비리 수첩에는 모두 4백명의 청탁자 이름과 4백33건의 청탁내용이 기록돼 있다. 그 중 1백33명이 현역군인이다. 이 현역 중에는 4성장군으로부터 영관 위관 하사관에 이르기까지 군 간부의 모든 계급이 다 포함돼 있다. 청탁의 내용도 병역면제로부터 특과주특기 부여, 입대일자 연기에 이르기까지 있을 법한 모든 병무비리가 다 망라됐다. 군기강과 사회정의의 위기를 상징하는 비리 리스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는 장성 7명을 포함해 단순청탁자의 경우는 보직해임 같은 징계가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비난여론에 노출된 지휘관의 군령(軍令)이 바로설 수 있을지 우려된다. 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도덕성을 되돌아보면서 거취문제를 심각히 숙고해야 할 것이다. 군장성인사가 불가피하게 뒤따른다면 개혁정책에 걸맞은 검토가 있어야 하리라 본다.

더불어 검찰은 민간인 청탁자들을 성역없이 조사해 지도층의 이기주의를 단죄해야 한다. 민간인 1백85명 중에 전 현직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가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건전사회 정착을 위한 홍역으로 알고 모두가 떳떳하게 임하는 것이 재발 방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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