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IISS 전략문제논평]재집권 노리는 중남미軍部

  • 입력 1998년 6월 19일 19시 42분


1980년대와 90년대초 중남미에서는 문민정부가 군사독재정부를 대체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는 82년 포클랜드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후유증으로 몰락했으며 우루과이와 칠레 군사정부는 각각 80년과 88년 집권연장을 위해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패해 정권을 내놓았다.

90년대 중반 쿠바를 제외한 중남미 전역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이 물러나 민주주의를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불과 몇년 뒤 군부가 다시 집권욕을 불태우고 있다. 일부 군출신 과거 독재자들과 고위 장교들이 쿠데타에 의한 집권이 아니라 선거를 통한 집권을 꿈꾸고 있다.

문민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들 군부의 집권욕을 부추겨 왔다. 문민정부는 국민의 여망과 달리 부정부패와 경제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정치는 인물중심의 파벌정치로 흘렀다. 민주주의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크다면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최근 몇년 동안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쿠데타 시도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쿠데타는 정부 전복보다는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부 군출신 과거 독재자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되찾으려고 시도했다. 97년 볼리비아 대선에서는 71∼78년 철권정치를 폈던 군출신 독재자 우노 반세르 수아레스가 승리했다. 당시 진보적 긴축경제정책으로 임금삭감과 고실업의 고통에 시달리던 국민 사이에는 과거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옛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는 것이다.

96년 과테말라 대선에서는 82년 쿠데타로 집권했었던 전독재자 리오 몬트 장군이 쿠데타 주동자였다는 이유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기 전까지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다. 92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예비역 대령도 12월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했다. 페루 군부는 92년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주요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에콰도르 군부는 97년 ‘정신적 결함’을 이유로 압달라 부카람 당시 대통령을 몰아낸 ‘의회쿠데타’를 지지해 권력을 장악했다.

이처럼 중남미에서는 군부가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등장하고 있다. 군출신 정치인 중에는 쿠데타나 군사시위를 주도한 사실을 주요 정치경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자들도 있다.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부의 정치적 부상은 중남미 민주주의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왔다. 중남미가 민간인과 군부간 ‘권력의 순환’을 영원히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80년대와 90년대초 군사정부가 국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해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최근 문민정부 역시 국정수행을 잘못해 다시 군부에 정권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정리〓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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