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동욱/너무 서두르지 말자

  • 입력 1998년 5월 30일 20시 02분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송사리를 지지는 것처럼 하라(치대국 여자소선·治大國 如煮小鮮)’고 가르쳤다. 즉 송사리를 지질 때는 불을 지펴서 끓으면 조용히 불을 꺼야 하며 장작을 마구 때면서 솥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이리저리 저으면 다 타 부스러져 먹지 못한다는 뜻일 것이다.

▼ 정부 다그치는 모습 불안 ▼

국민의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한파를 다스리는 모습은 후자와 흡사한 것처럼 여겨진다. 즉 재벌구조조정도 금융구조조정도 너무 성급히 다그치면서 법석을 떠니까 될 것도 안되게 망가져 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만 할 규제를 푸는 것에 대해선 소리만 크게 외쳤지 푼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게 국민의 여론인 것이다.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지침(대출총액에 대한 자기자본비율 8%)을 지키는 것은 IMF와의 협약사항이어서 꼭 지켜야만 할 일이다. 그러나 이를 지나치게 몰아붙인 나머지 신용장(LC)을 받은 기업에도 수출금융지원을 안해주는가 하면 수출용 원자재에 대한 수입금융도 마다하고 신용이 단단한 흑자기업의 어음까지도 부도 처리를 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12%의 금리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회생불가능한 것으로 간주, 정리하려는 데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기업정리를 할 때 생기는 실업자 문제와 퇴직금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정리기업의 채무는 누가 떠안느냐 하는 것 등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데 요란하게 야단만 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재벌구조조정에 있어서도 부실기업은 떼어버려야만 하겠으나 정리기업의 채무를 잘 돌아가는 기업에 떠넘긴다면 잘 돌아가는 기업마저도 부실화시키는게 아니냐 하는 우려도 있다. 부실은행을 인수하려는 어느 외국은행의 간부는 “부실은행의 부실채권을 한국정부가 떠안아 준다면 인수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부실채권을 정부가 떠안는다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준다는 것이다. 이것도 수긍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한보 기아 등 부실기업의 처리문제도 부실채무가 걸림돌이 돼 골치를 앓고 있지 않은가.

물론 IMF의 멍에로부터 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자면 IMF와의 협약을 잘 이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정부내의 사람들이 너무 설치는 나머지 서로 다른 주장을 마구 떠들어댄다면 국민은 누구의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IMF한파를 다스리려면 정부 사람들이 말을 아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금융 및 재벌 등의 구조조정도 성급히 설친다고 빨리 될 일이 아니다. 적어도 3년쯤의 시한을 두고 꾸준히 작업을 진행시켜야 한다. 최대의 걸림돌인 부실채권 문제도 그렇다. 담보물건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의 자유매매를 규제하고 있는 1백여개의 관계법규를 철폐하는 것만도 단시일안엔 되지 않을 일이다.

▼ 규제 푼 다음 구조조정을 ▼

따라서 기업에의 대출한도에 대한 BIS지침(자기자본의 200%)을 지키도록 하는 것도 시한을 두지 않고 지금처럼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수출에 차질을 빚고 흑자기업의 도산을 부르는 우(愚)를 범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콜금리를 인하하더라도 통화공급량이 늘어나지 않을 상황이기 때문에 시중금리의 인하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소리도 높다.

모든 일을 서둘러 하려하기보다는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행위에 대한 규제를 국민의 피부에 와 닿도록 풀어야 한다. 그래서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자율적 조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두르지 말자. 늦는 것 같지만 확실히 하는 것이 빨리 가는 길이다.

이동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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