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할 말과 안할 말

  • 입력 1998년 5월 11일 19시 46분


도지태아(倒持泰阿)라는 옛말이 있다. ‘태아’는 중국전설에 나오는 보검(寶劍)으로 이를 거꾸로 쥐었다는 말이다. 자신의 위세만 믿고 상대를 우습게 여기다가는 결국 낭패를 본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 경우는 과거 여야관계에서 수없이 보아 왔다. 그런데 일단 집권하면 권력에 취해 과거 교훈을 잊는 모양이다. 국민회의가 환란(換亂)수사와 관련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에게 답변서 재제출을 요구한 것도 한 예다.

▼조세형(趙世衡)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은 김전대통령이 답변서 재제출 요구에 불응할 경우 검찰수사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마치 검찰총장이나 중앙수사부장의 발언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다. 검찰의 독립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발언이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국회의원과 정당은 국정 전반에 관해 말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할말 안할 말은 분명히 있다. 국민회의가 오만해지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김전대통령을 두둔하거나 검찰의 환란수사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수사는 검찰 소관이며 정치가 개입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민회의가 김전대통령의 답변서 내용에 불만이 있더라도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식은 지나치며 옳지 않다. 답변서가 미흡하다면 검찰이 알아서 대면(對面)조사를 하든지 답변서 제출을 다시 요구하든지 할 일이다.

▼조대행의 발언을 단순한 지방선거용으로 축소해석할 여지도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역효과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자신의 치적 중 하나로 검찰의 독립성 보장을 꼽았다. 아울러 편파수사는 없다고 단언했다. 국민의 체감(體感)과 어느 정도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검찰의 중립에 바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육정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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