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뿌리」찾아온 재일교포 문창섭변호사

  • 입력 1998년 5월 4일 19시 53분


무엇이 그를 한국으로 오게 했을까.

“일본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꼭 한국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 같기도 하고 재일교포로서 가져왔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모국어를 배우겠다는 열망 하나로 지난 3월부터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강좌를 듣고 있는 재일교포3세 변호사 문창섭(文昌燮·35)씨.

아직 기초적인 인사말밖에 할 줄 모르는 문변호사는 96년 일본 사법고시를 통과한 7백명의 수재 중 한명. 재일교포는 그를 포함해 3명이었다.

“재일교포들의 권익향상 문제 보다도 우선 제 정체성에 대한 자기점검 같은 것을 먼저 끝내고싶다는 게 정확한 이유입니다.”

문변호사는 이를 위해 2년간 연수활동을 마치자마자 바로 한국을 찾았다. 법률사무소에도 1년간 휴가를 신청했다. 그의 사시 합격을 뒷바라지한 일본인 아내 기무라 미호코(木村美穗子·33)도 ‘남편의 나라’에 기꺼이 동행했다.

문씨는 학창시절 가난한 수도배관공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트럭운전수 조수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86년 오사카(大阪)시립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문씨는 다른 취업의 길을 외면하고 두차례나 오사카시 공무원시험에 도전했다.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재일교포들의 활동영역을 더 넓혀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접시닦이와 우편배달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가며 응시한 도전에서 2차례 다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보이지 않는 벽’앞에 낙담한 그는 법률사무소에 입사하면서 사시로 방향을 바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곳에서 만난 아내가 아예 생계를 도맡았다. 문씨는 공부에만 진력, 7전8기끝에 꿈을 이뤘다.

“8월경 한국을 방문할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거창군 대현리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때는 유창한 한국말솜씨를 선보여야죠.”

아내와 한국어 배우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문변호사의 또다른 도전이다.

〈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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