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16/다물자연학교]도시아이들,「자연 품」으로

입력 1998-05-04 07:50수정 2009-09-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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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심기 전에 자른 부위에 재를 발라주는 이유는 뭘까요.”

어린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서로가 질세라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대답들을 쏟아냈다. “화장해 주려고요” “새끼를 많이 치도록 하기 위해서요” “방부제를 뿌려주는 거지요”….

선생님의 설명. “우리 손에 상처가 났을 때 나쁜 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소독약을 발라주는 것처럼 감자에도 상처난 부위에 재를 발라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볏짚을 태워 만든 잿더미에 감자를 비벼 재를 묻힌 뒤 밭고랑에 하나 둘씩 심어 나갔다.

무악산 뒤편에 위치한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산기슭의 다물자연학교 자연학습장. 4백여평에 달하는 밭과 미나리꽝, 인근의 야산 전체가 어린이들의 배움터다. ‘다물’은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의 회복’이라는 순우리말.

학교수업을 마친 토요일 오후. 양천구 목동의 월촌과 경인 초등학교에서 온 13명의 어린이들은 흙 냄새를 맡으며 볏짚도 태우고, 감자도 심고, 버들피리도 만들어 불었다. 또 미나리꽝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올챙이며 잠자리수채 소금쟁이 장구애비도 잡았다.

감자심기를 마친 어린이들은 다물자연학교 교장선생님인 김영식(金永植·37)씨의 지시에 따라 다시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감자를 심은 소감과 만약 여러분들이 감자농장 주인이라면 감자로 무엇을 만들어 팔 수 있을지를 관찰기록문에 적어보세요.”

발표에 나선 어린이들의 대답은 기발하고도 각양각색이었다.

“감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처음으로 알았다. 재가 소독약 역할을 한다니 신비롭기만 하다. 감자두부 감자김치 감자초콜릿 감자장난감 감자껌 감자술 감자고춧가루를 만들어 팔겠다.”

“감자 한 개를 심어 열 개를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하다. 내가 수확한 감자를 먹어 보고 싶다. 감자전 감자떡 감자탕 감자튀김 감자과자를 만들어 보겠다.”

페트병을 개조해 만든 미니어항에 손수 잡은 올챙이를 넣어 목에 걸고 버들피리를 불며 귀가길 미니버스에 오른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또 오고 싶다”고 외쳤다.

다음날인 일요일. 목동의 영도와 경인, 서대문구의 경기와 이화초등학교에서 온 10명의 어린이들은 노현묵(盧炫默·37)교사의 인솔로 역사탐방길에 나섰다.

경기 구리시 동구릉에 들러 조선 태조와 영조의 능을 둘러보며 역사와 함께 능과 정자의 구조에 대해서도 배웠다. 남한산성에서는 병자호란기념관과 삼전도비를 둘러보며 산성과 외침(外侵)에 대해서도 배웠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강남구 세곡동에 위치한 헌인릉.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KBS 사극 ‘용의 눈물’의 주인공인 태종 이방원(李芳遠)이 묻힌 곳이다. 어린이들은 태종의 업적과 함께 쌍릉 단릉 합장릉등 능의 종류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다물자연학교는 일종의 방과후학교. 학교수업을 마친 평일 오후나 토 일요일,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교실에서 배우지 못하는 자연과 역사에 관한 산지식을 실제 체험을 통해 배우는 곳이다.

이 때문에 다물자연학교에는 학교와 교실이 따로 없다. 바깥세상이 모두 학교이고 교실인 셈이다.

학생들은 주로 초등학교 3,4학년생.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때이고 공부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매주 화요일 오후와 수요일 오후는 각각 3학년과 4학년을 위한 모둠활동 시간이다. 10∼15명씩 팀을 짜 진관내동 파주 김포 등 서울 근교의 자연학습장을 찾아 자연생태에 대해 배우고 서울시내의 박물관 전시관 왕궁과 근교의 성터 유적지 등으로 가 역사탐방을 하기도 한다.

또 각 지역의 향교와 고개 등을 찾아 지역역사를 조사하기도 하고 남대문 노량진 가락동수산시장에 들러 삶의 현장을 체험하기도 한다.

난지도쓰레기매립장과 가양하수처리장에서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지렁이가 인분을 분해하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견학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학습코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다소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한층 다양하다.

특히 일요일에는 횡성 부여 공주 천안 제천 단양 여주 강화도까지 원정가서 야생화 조사와 나물뜯기 곤충채집 모내기 석회동굴견학 벼메뚜기잡기 갯벌탐사 민물고기잡기 등을 한다.

또 화력발전소와 시멘트공장 등을 견학하기도 하고 유적지들을 찾아 얽힌 역사를 익히기도 한다.

김교장은 “도시에 살면서 컴퓨터와 전자오락 편의식품 등 문명에 길들여진 어린이들에게 체험을 통해 자연과 역사를 이해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심성을 길러주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연락처 02―643―4558.

〈이진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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