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9월 15차 당대회에서 장총서기는 70세가 넘은 간부는 물러나자고 제의했다. 자신은 그해 11월이 고희였고 생일이 몇달 빠른 차오스(喬石)는 은퇴해야 했다. 2002년 16차 당대회때 75세가 될 장총서기가 물러난다면 그 후임으로 후부주석이 가장 유력시된다. 다른 신진 인물들에 비해 그는 장총서기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후야오방(胡耀邦) 등의 신임을 받았다.
▼그는 칭화(淸華)대학 재학시 당성을 높이 평가받아 졸업 후 모교의 정치지도원이 됐다. 문화혁명기엔 간쑤(甘肅)성 건설위 서기로 쫓겨갔다. 거기서 그는 행정능력을 인정받았다. 여러 지방성 당서기를 거치면서 그는 “관료주의 냄새가 적고 민중과 함께하는 지도자(官氣小 深入基層)”로 불렸다. 티베트 당서기 때 얻은 고산병때문에 요양차 베이징(北京)에 온 그는 장총서기가 맡기는 과제마다 매끄럽게 해냈다.
▼그가 이번 4박5일 방한기간 중 보인 ‘라오펑요우(老朋友)외교’도 화제다. 오래전 알게 된 정치인을 따로 만나 우의를 다진 것이다. 요즘 논쟁거리인 아시아적 가치 가운데 하나다. 과거 중국과 북한의 빨치산세대도 ‘라오펑요우’ 관계였기에 그의 방한을 계기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새삼스레 관심사다. 그가 속한 제4세대가 등장할 21세기엔 경제와 실용으로 국가관계도 재정립돼야 할 것이다.
〈김재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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