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관/「수의 논리」언제까지…

  • 입력 1998년 4월 23일 19시 43분


“정치는 수(數)의 논리다.”

금권정치의 상징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일본총리의 지론이다. 그러나 일본내에서 정치인들의 금과옥조가 됐던 이 말은 93년 자민당 일당지배가 무너진 이후 ‘패권주의 정치’의 상징으로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정계개편을 둘러싸고 ‘의원빼가기’와 저지에 사력을 다하는 여야의 모습을 보면서 다나카 전총리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수의 논리에 얽매여 구태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실제로 야당을 설득하기보다 ‘밀어붙이기’식 정국운영에 나선 듯한 여권이나 대통령까지 선거법위반으로 고발하는 등 ‘막가는’ 야당의 행태 속에는 이런 다나카식 수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야 모두 한국정치의 유산인 ‘패거리’정치에 대한 미련으로 수의 논리에 집착하면서도 정계개편의 방법론 등에 있어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권의 경우 국민회의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이 야당의원들에 대한 ‘문호개방’ 발언으로 야당을 자극한 21일 청와대에서는 ‘선거법 타결 후 여야영수회담추진’이란 발언이 튀어나왔다. 결국 영수회담 추진발언은 취소됐지만 여권이 원하는 것이 타협인지 강공인지 헷갈리게 만든 셈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당일각에서 “어차피 떠날 ‘정치철새’들을 붙잡는데 연연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돌고 있으나 당지도부는 당내 비난을 의식, 장외투쟁 불사 등 강경일변도로만 치닫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후 의원숫자가 문제가 됐던 적은 총리임명동의안 처리때뿐이었다.

최근 정치권의 흐름은 이념이나 정치노선이라는 ‘질(質)’은 도외시한 채 ‘수’의 논리만 난무하는 한국정치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동관<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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