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남편의 룸살롱 접대

  • 입력 1998년 4월 22일 19시 45분


▼ 아내생각 ▼

장윤식(32·주부·서울 성북구 종암동)

저도 직장 생활경험이 있어 술문화를 좀 압니다. ‘지금 어디에 있고 언제 들어갈 것 같다’고 그때그때 전화해 주는 남편에게 고마워하고 있고요. 특히 외부인사 접대라면 여자가 있는 룸살롱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술은 먹더라도 꼭 룸살롱엘 가야 할까요?

아무래도 술이 들어가면 기분이 붕 뜨지 않겠어요? 이때 행동을 자제하지 못할 수도 있죠. 밤 늦도록 남편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접대나 사교문화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녜요. 다른 방법으로도 친밀한 인간관계가 가능하다는 거죠. 서양에선 점심식사로 사교하고 저녁은 가족과 함께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잖아요? 간단한 저녁에 맥주 몇 잔하거나 주말에 등산이나 테니스 같은 레저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남편의 와이셔츠에 립스틱이 묻어 부부싸움했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그때 남편들은 ‘그냥 노래하고 기분에 블루스를 잠깐 추다가 우연히 묻었다’고 한다지만 애초에 안 가면 그만 아녜요? 아내인 제가 직장인이고 ‘사교상’다른 직장남성과 밤늦도록 술마시다 들어온다면 남편이 눈감아 줄 수 있을까요?

▼ 남편생각 ▼

정경태(33·삼성화재 인사팀 대리)

술먹고 늦게 들어가도 “건강 생각해야죠”하면서 묵묵히 이해해주는 아내에게 늘 감사하고 있어요. 룸살롱에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죠. 좋아하고 원해서 가는 건 물론 아닙니다.

남자 직장인이라면 사교나 회식, 접대를 하러 룸살롱에 간 경험이 한두번씩은 있을 겁니다. 우리의 뿌리깊은 접대문화를 송두리째 바꾸지 않는 한 룸살롱 출입을 끊어버린다는 건 힘든 일이죠. 인정을 중시하는 사회에선 술한잔 하며 얘기하다 보면 심한 갈등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고요.

문제는 접대방법입니다. 사업상 중요한 손님을 대접할 때 술은 한잔 해야 하겠고 그렇다고 호프집이나 카페에 갈 수 없는 게 현실 아닙니까. 왠지 소홀한 듯한 느낌도 들고…. 조직사회에서 혼자 ‘난 안간다’고 할 수도 없죠.

그러잖아도 요즘엔 저녁을 가볍게 먹고 사우나를 함께 한다든지 2차 안가기, 주말에 테니스치기 식으로 새로운 사교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룸살롱 접대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해요. 하지만 아내가 상상하는 식의 경우는 실제 드뭅니다. 딱딱하고 사무적이던 관계도 여성들이 있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의외로 잘 풀리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 줄 순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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