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정의로운 폭력」과 시민정신

  • 입력 1998년 4월 21일 19시 25분


불의(不義)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 죄라면 죄라고 할까. 흡연하는 10대를 훈계하다 대들면 몸싸움까지 해야 하는 난처한 경우가 있다. 타인의 싸움을 말리다 폭력에 휘말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상대방이 상해진단서를 떼어 고소하고 달려들면 형사입건돼 폭력전과자로 등록되는 엉뚱한 사태가 올 수 있다. 귀찮은 수사 재판과정은 물론 재수 없으면 많은 돈을 들여 합의도 해야 한다.

▼누군들 이런 결과를 원할 리 없다. 그러다 보니 남의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풍토가 사회에 만연된다. 눈앞에서 소매치기 부녀자희롱 등이 벌어져도 외면하고 마는 게 보통이다. 정의감이나 시민정신이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여기에는 수사기관의 기계적인 법 적용, 즉 상해진단기간이 길면 동기보다 결과를 더 중시하는 처리방식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이다.

▼검찰은 앞으로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정의감의 발로’로 인정되는 경우엔 입건조차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대책이 나온 배경에는 국민의 법감정 외에 놀라울 정도로 높은 ‘폭력지수’가 작용했다. 인터폴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폭력사범이 한국은 4백8명으로 4백18명인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3,4위는 캐나다 일본으로 각각 1백65명, 14명. 순위로나 지수로나 한국은 단연 ‘폭력왕국’이다.

▼미국에선 현행범을 추격하는 시민은 공무집행중인 경찰관과 똑같이 대우하는 법이 있다. 사망하면 순직으로 처리해준다. 시민정신을 법이 철저히 뒷받침하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97년 우리의 폭력사범은 전체범죄의 20% 가량인 38만여명으로 교통사범 다음이다. ‘정의로운 폭력’을 구별해 폭력사범을 줄이되 행여 폭력을 부추기는 부작용은 막아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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