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MBC 「대왕의 길」

  • 입력 1998년 4월 15일 07시 27분


역사를 드라마의 소재로 끌어들인 사극은 때로 교과서를 뛰어넘는 역사 배우기의 교훈을 주기도 한다. KBS1 ‘용의 눈물’이 대표적 예다. 학계의 입장에 관계없이 드라마의 인기는 ‘용의 눈물’식 역사풀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15일부터 방영되는 MBC의 사극 ‘대왕의 길’(수목 밤9·55).

조선후기의 중흥기를 이끈 영조와 정조를 주인공으로 하여 야사보다는 정사를 토대로 왕의 생애를 그린 궁중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볼거리를 쏟아놓는다. 아버지(영조)가 아들(사도세자)을 뒤주에 넣어 죽이는 비극의 전조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일까.

영조가 왕세자 자리에 있을 때 그를 암살하려는 무리들이 칼을 휘두르며 대궐 안팎을 뒤진다. 영조는 이를 피해 인원왕후의 치마 밑으로 숨고 추격자들이 뛰어들자 왕후는 “궁금하면 (치마를) 들춰보라”고 말한다.

영조와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고뇌한다는 사도세자는 칼싸움으로 소일하고 칼로 내시를 위협하며 “소피를 봤구나. 분(糞)까지….”하는 ‘반 건달’로 묘사된다.

드라마가 단순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닌 만큼 역사의 행간을 해석하는 것은 작가와 연출자의 정당한 몫이다. 또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극적인 과장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선정적이고 과장된 장면들은 아들 살해의 원인을 설명하는 실마리가 아니라 볼거리 자체에만 머물러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단지 성격 파탄자로 비쳐질 뿐이다.

사도세자를 둘러싸고 갈등을 형성하는 문숙의와 문성국에 대한 묘사도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문성국이 기찰포교를 사칭해 처녀를 겁탈하고 문숙의가 목욕하는 장면이 꼭 필요할까.

사극 역시 드라마인 까닭에 오락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역사를 다룬다는 장르의 특성상 역사에 대한 관점과 시각을 형성하기도 한다. 균형감각과 품격을 잃어버린 사극은 시청률이 높을수록 되레 해가 될 수도 있다.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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