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원홍/『모두 내 죈데 어린것이 왜…』

  • 입력 1998년 3월 26일 20시 33분


영정도 없는 빈소. 불어버린 컵라면과 비스킷이 놓인 제단. 아무도 지키지 않는 이모양(15)의 영안실. 26일 오전 2시경 서울 강북성심병원. 친구 3명과 함께 투신 자살한 딸의 시신이 누워 있는 영안실로 달려온 아버지 이모씨(56)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채 연신 술만 들이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향을 피우지 못했는데 먼저간 딸의 향을 피울 줄이야….”

이씨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여의어 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 의붓아버지 밑에서 최씨 성을 지니고 살았다. 17세때 의붓아버지마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본가 친척을 찾아다녀 이씨 성을 찾아주었다. 이때부터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고 막노동으로 식구들을 먹여살렸다.

“부모는 나에게 물려준 것이 없지만 나혼자 힘으로 헤쳐가리라고 생각했고 딸에게도 그런 신조를 가르치려 했는데 세상을 못 이기고 가다니….”

이씨는 보증금 1백만원에 월세 20만원의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다가 지난해 중순 15평짜리 전세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양은 ‘돈, 난 돈이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해요. 우리집은 언제나 돈이 문제였죠’라며 가난에 상처받은 심경을 유서로 남겼다.

하지만 이씨는 국제통화기금(IMF)이후 목수 일감이 떨어져 악전고투했다.

“일하러 가는 날이 점점 줄었습니다. 일당도 20%깎이고….”

이씨는 이날도 대전에 일하러 내려갔다가 밤9시경 연락을 받고 택시를 타고 상경했다. 택시 안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미끄러져 떨어졌을 것”이라며 딸의 자살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이씨. 그는 결국 “떨어지는데 몇초는 걸렸을 텐데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내 죈데 왜 그 어린 것을 데려간단 말이냐. 가난이 무슨 죄라고…”라며 눈물을 삼켰다.

〈이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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