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추태로 막내린 인준국회

  • 입력 1998년 3월 3일 06시 57분


국회가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투표함만 보전한 채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국정공백을 메우고 국력을 집중해야 할 때 정치권의 추태를 또다시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무겁고 착잡하다. 여야 정치인들은 파당적인 이해에만 집착하다 국정정상화의 기회를 놓쳤다. 이로 인한 후유증은 엄청날 것이다. 며칠째 계속돼 온 국정 혼란이 장기화한다면 정치권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여야는 이 시점에서 저마다 심각히 자성하면서 국가의 장래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변칙 투표를 하려 한 한나라당이나 과거 야당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정치력 부재를 드러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행태는 누가 더 못하고 더 나을 것이 없다. 여야만 뒤바뀐 구태 국회일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파당적 이기주의를 버리고 난국 돌파에 최선을 다하는 정당만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여권은 김종필씨의 총리서리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정상적이 아닌 서리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국회는 곧 추가경정예산을 처리해야 하고 지방자치법 등 각종 정치개혁 관련법도 빨리 손질해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국회에 임명동의를 받지 못한 총리서리가 나와 국정을 논한다면 원만한 여야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종필씨가 아닌 제삼의 인물을 총리서리로 지명해도 마찬가지다. 위헌시비가 끊이지 않을 총리서리가 내각을 이끌어갈 때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총리서리체제는 국정과 의정(議政)모두를 파행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많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현재의 고건(高建)총리 제청을 받아 급한대로 장관들을 임명하는 것은 국정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불가피할지 모른다. 새 정부조직법이 이미 공포 발효된 상황에서 행정의 혼란이나 공백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측면이 있다. 전(前)정부 총리의 제청이어서 새 정부 출범과 어울리지 않는 일면도 있으나 뒤죽박죽된 국정을 빨리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김대통령은 원칙과 정도(正道)로 대치정국을 풀어나가야 한다. 국정공백상황은 빨리 해소해야 겠으나 총리서리체제는 문제가 많은 만큼 신중을 기할 일이다. 거대야당 또한 국정이 잘못되면 결국 여당과 공동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향후 정국은 극도로 혼미해질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나라가 어려운 판에 정치쪽이 이래서는 안된다. 민주적인 과정과 절차를 거친 새 총리가 한시라도 빨리 등장하도록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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