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부실과 책임경영

  • 입력 1998년 3월 2일 20시 08분


은행부실의 실상이 주주총회를 전후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은행감독원이 14개은행에 대해 경고조치를 내린 것이 그 한 예다. 해당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이 국제결제은행(BIS) 요구선인 8%에 못미치는 은행들로, 자기자본비율이 1%에도 못미치는 은행마저 있었다. 26개 시중 및 지방은행 가운데 절반이 넘는 은행이 BIS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 은행들의 부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기준에 따라 6대 시중은행의 대손충당금을 완전히 반영할 경우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재무제표에 적혀 있는 것보다 2.4배나 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은행들이 손실을 숨겼다는 뜻이다. 부도업체와 종금사에 물린 돈이나 동남아 투자손실 등 부실채권을 100% 반영할 경우 모든 은행이 적게는 5천억∼6천억원, 많게는 2조원이 넘는 손실을 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금융산업의 경영개선 구조조정이 시급함을 말해주는 자료들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경영개혁을 과제로 안고 있는 시점에서 열린 올 은행주주총회가 모두 끝났다. 은행장 인선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새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번 은행 주주총회가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치러진 것은 일단 다행이다. 그러나 은행장 몇명을 다시 뽑고 임원진만 대폭 물갈이 한 결과를 놓고 책임경영의 실종이라는 우려가 청와대에서 나온 것은 은행들의 큰 짐이다.

일부 은행에서 소액주주들의 발언수위가 높았던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재정경제부가 대주주 주권을 내세워 인사에 개입함으로써 관치금융이라는 일부 반발을 부른 것은 흠으로 남는다. 대부분 은행들이 이사대우라는 이름으로 임원진을 늘린 것도 경영쇄신 측면에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경영이다. 금융산업의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은 IMF의 우선적 요구사항이다. IMF위기는 금융산업의 부실화와 취약한 외환관리능력에서 비롯되었다. 재벌개혁 등 산업전반의 구조조정을 은행중심으로 해나가야 할 막중한 과제에 비출 때 금융산업의 어깨는 대단히 무겁다. 무엇보다 개별은행의 부실요인을 줄이고 차입금의 투자전환이나 과감한 인수합병 수용 등 경영방식의 전환을 통해 자본을 대폭 확충하는 일이 급하다.

IMF의 금융개혁 요구는 절대적이다. 인사가 만사(萬事)이긴 하지만 주총인사에 미련을 가질 여유가 없다. 은행도 망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철저한 책임경영으로 금융산업이 거듭나지 않고는 IMF위기 탈출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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