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산업스파이 비상

  • 입력 1998년 2월 3일 20시 28분


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전 현직 연구원들이 반도체 핵심기술을 빼내 대만 기업에 팔아넘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동안 국내기업간의 정보빼내기, 인력스카우트 등 산업스파이소동은 간혹 있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첨단산업기술을 수출경쟁국의 기업에 도둑맞은 일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둑맞은 기술은 양사가 수년간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개발한 64메가D램의 제3세대기술로 우리와 일본 등만 갖고 있는 최첨단기술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향후 세계 반도체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그 결과 우리의 반도체산업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니 더욱 충격적이다. 냉전종식 이후 세계의 스파이전은 군사외교전에서 산업경제전선으로 옮아붙고 있다. 90년대 들어 세계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것은 중화기로 무장한 군대가 아니라 기술과 자본, 판매의 노하우로 무장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경제전쟁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 최고의 상품기술 확보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가간 경제전쟁이 가열되면서 각국 정보기관들도 경제 과학정보수집과 자국의 산업기술보호에 힘을 쏟고 있다. 외교관이 주재국 대기업의 기밀을 빼내는 일이나 외국기업들의 전화 팩스 도청 등으로 당사국끼리 외교적 마찰을 빚는 일이 적지 않다. 산업스파이활동에 따른 독일의 피해는 연간 1백억달러, 미국은 6백30억달러에 달한다는 보고서가 있다. 한국은 92년에야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 선진국들처럼 영업비밀보호제도를 도입했다. 기존의 지적재산권 보호제도가 관련법에 등록된 기술상의 비밀만을 보호하도록 돼 있으나 새 제도는 특허등록이 돼 있지 않은 기술정보와 상업정보 경영정보 등까지도 ‘영업비밀’로 분류해 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 제도 외에도 산업스파이는 업무상 횡령죄나 절도죄 등으로도 처벌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법과 제도만으로는 산업스파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산업스파이 예방은 인적관리가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반도체는 국내의 다른 어떤 기업들보다 정밀한 보안장치와 시스템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두 기업이 극비로 분류한 첨단산업비밀을 빼내 외국기업에 팔아넘긴 사람은 다름아닌 두 회사의 전 현직연구원들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첨단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내 기업들도 산업스파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인력관리 등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제는 우리 기술을 지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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